들국화, 그리고 도라지꽃

by 마정열

'들국화'라는 고유 이름을 가진 꽃은 없다. 들판이나 숲 속에서 자라는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감국 같은 국화과 야생종을 뭉뚱그려 들국화라고 부를 뿐이다.


가을 들판을 걷다 보면,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가느다란 줄기 끝에 수줍은 얼굴을 내민 들국화를 만나곤 한다. 소박한 보랏빛, 연분홍, 혹은 흰빛의 작은 꽃들은 누군가의 눈길을 기다리지도 않고, 세상의 소란과 무관하게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며 피어있다. 들국화를 볼 때마다 기다림을 생각한다. 들국화는 가을을 기다린다. 더위와 장마를 견디고, 길고 무더운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자기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는다. 마치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사랑처럼 들국화는 오랜 시련 뒤에 마주하는 어떤 기쁨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들국화는 화려하지 않다. 도심의 꽃집 진열대에서 자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꽃보다 강하고 단단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돌 틈 사이, 바람 거센 산비탈, 비옥하지 않은 땅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이 피는 마음, 자신이 태어난 곳을 탓하지 않고 계절을 맞이하는 당당한 자세. 아마도 이것이 들국화의 가장 큰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밤새 흰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황량한 들판에서 흔들리고 있는 들국화를 보고 있노라면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 어쩔 수 없다. 이즈음 들국화는 아름다움이나 환희보다는 애잔함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느낌의 노래가 있다. 김태곤의 '들국화'다.


무지개 피고 나뭇잎 피고 꽃 피고 웃음도 피고

무지개 지고 나뭇잎 지고 꽃 지고 웃음도 지고

엄마 부르던 아기는 들국화가 되었나

하늘을 가르는 은빛 날개는 내일을 보며 접어 두노라


무지개 피고 나뭇잎 피고 꽃 피고 웃음도 피고

무지개 지고 나뭇잎 지고 꽃 지고 웃음도 지고

강 건너 작은 등불은 풀벌레들 놀이인가

하늘을 가르는 은빛 날개는 내일을 보며 접어 두노라


이 노래 속에서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눈 감고 노래를 듣다 보면 우리의 슬픈 역사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이가 태어났다. 가난한 부부는 너무나 기뻤다. 엄마의 품에 안겨 방긋 웃는 아기의 모습에 여인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늘은 부부의 행복을 그냥 두지 않았다.


전란이 일어났다. 남자는 전쟁터로 갔다. 밤새 울리는 포소리에 여인의 가슴은 터질 듯했다.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남편은 소식도 편지도 없었다. 여인은 눈물 없이 잠들지 못했다.

아이는 자랐다. 어느새 네 살이 되었다. 여인은 홀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날도 여인은 새벽밭으로 나갔다. 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여인은 아이를 이불에 꼭 싸놓고 문을 지그시 닫았다.
“금방 다녀올게.”

그날따라 아이는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꿈에 본 무서운 아저씨가 방안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

아이는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없었다. 아이는 두 팔로 문고리를 겨우 잡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싸늘한 세상으로 나갔다. 언덕 너머로 들판을 가로지르는 아침 안갯속으로 아이는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여인이 돌아왔을 때 아이의 작은 신발이 문가에 없었다. 여인은 혼이 나간 모습으로 달려 나갔다. 들판, 논두렁, 마을 어귀, 그리고 언덕 너머… 거기서 여인은 아이를 찾았다. 작은 몸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마에는 돌부리에 찧은 자국이 선명했고, 입술은 파랬다.


엄마를 찾아 떠난 그 짧은 여행의 끝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길이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여인은 아이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생각하며 가슴을 쳤다.


여인은 아이를 묻었다. 며칠 뒤 무덤 옆에 작고 보랏빛 꽃 하나가 피었다. 들국화였다.

아이의 숨결이 남은 것처럼, 가녀리게 피어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 눈이 오고 다시 봄이 와도 그 자리엔 언제나 들국화가 피어 있었다.


그리고 김태곤의 '들국화'를 들고 있으면 백석의 '여승'이 생각이 난다. 두 작품 다 아버지의 부재와 아이의 죽음이 연상되기 때문일까? 김태곤의 '들국화'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가 연상된다면, 백석의 '여승'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슬픈 역사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 가족의 모습이 보여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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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찾던 아이는 들국화가 되었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핀 돌무덤으로 갔다. 무덤가에 피어난 들국화와 도라지꽃은 우리에게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라고 처연히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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