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으로 가자

by 마정열

막바지에 몰린 단풍을 감상하려고 강원도로 차를 몰았다. 저물어가는 가을정취를 좀 더 오래 만끽하고자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선택하였다. 차가 인제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에 어디선가 읽은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생각났다. 별 바쁜 일도 없기에 아내에게 “원대리 자작나무 숲 보고 갈까?” 하고 물었다. 아내는 흔쾌히 승낙했다. 불그스레한 얼굴 표정으로 보아 아내도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단풍은 춤추듯 허공으로 날아올라 한참을 선회하다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차는 단풍터널을 뚫고 내달렸다. 드디어 도착.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라고도 부르는 자연 생태관광지이다. 1974년부터 1995년까지 138ha에 자작나무 690,000본을 조림하여 형성된 이곳은 숲 속에 7코스의 탐방로와 숲 속 교실, 전망대, 생태연못, 인디언 집, 나무다리, 나무계단 등의 시설이 있어 산림욕과 힐링을 즐길 수 있다. 입구인 자작나무 숲 안내소에서 시작되는 숲길을 따라 걸어야 자작나무 숲에 닿을 수 있다. 숲길은 두 가지 길인데, 도보로 80분가량 소요되는 원정 임도와 1시간가량 걸리는 원대 임도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수령이 20년 이상 되는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이 펼쳐진다. 자작나무 숲은 하얀 줄기와 잎이 빛나는 모습이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이며 하늘을 향해 뻗은 자작나무 숲은 이국적인 풍취를 느끼게 한다.


자작나무 숲 안에서는 다양한 난이도와 거리의 탐방로를 선택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순백의 자작나무 숲 집중 생육 지역을 볼 수 있는 1코스(자작나무 코스)로, 약 0.9km 거리이며,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겨울철에는 흰 눈에 뒤덮인 숲과 새하얀 자작나무가 어우러져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좋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라면 유아 숲 체험원에서 숲 속 교실, 인디언 집 등 자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즐길 수도 있다.


문의 및 안내 033-463-0044

홈페이지 https://www.forest.go.kr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 자작나무숲길 760 안내소~자작나무숲

이용시간

[하절기(5월~10월)] 09:00~18:00 (입산가능 09:00~15:00)

[동절기(11월~3월)] 09:00~17:00 (입산가능 09:00~14:00)

휴일 매주 월요일 / 화요일 (단, 법정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정상 운영)

[출전: 대한민국 구석구석]


늦가을 햇살을 받고 오르니 등허리에 땀이 뺀다. 조금 힘들다 싶고, 언제 자작나무숲이 나타나고 조바심이 날 즈음 눈앞에 펼쳐진 장관! 가이 압도적이다.

자작나무1.jpg


자작나무의 애칭은 ‘겨울 숲의 귀부인’ 또는 ‘숲의 가인(佳人)’, 꽃말은 ‘당신을 기다린다’이다. 다른 나무에서 볼 수 없는 백옥(白玉)과 같이 흰 빛깔의 껍질은 그 어느 나무보다도 희망과 빛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자작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이 새하얀 수피(樹皮)에 반사돼 반짝거릴 때면 마치 북유럽 숲에 온 듯하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나무가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명도 많다. 나무껍질이 백옥(白玉)의 은빛을 띠기 때문에 ‘백단(白)’ 또는 ‘백화(白樺)’라고도 불린다.


우리 생활 문화사에 자작나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작나무는 한반도 개마고원쯤에서나 자라는 추운 지방 수종(樹種)으로 공기의 오염에 약하다. 북부지방 사람들에게는 자작나무 목재는 물론 기둥에서 장작까지 일상생활의 필수품이었다. 평안북도 정주 태생인 백석의 시를 보면 자작나무가 북방사람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나무인지를 알 수 있다.


백화(白樺) , 백석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 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니 세상이 한 톤 낮아진 듯 고요하다. 나무껍질은 종이를 두른 듯 얇고 하얗게 빛나 마치 숲이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면 그 하얀 줄기들이 은빛 파도처럼 출렁이며 가지 끝의 잎사귀들이 가볍게 부딪혀 은은한 종소리를 만들어 낸다.


피아노 건반 같은 자작나무를 오래 보고 있으니 문득 자작나무의 단순한 색이 오히려 깊고 복잡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흰색은 모든 빛을 품고 있다. 마치 사람의 침묵 속에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는 것처럼. 그래서일까, 자작나무 숲에서 서 있으니 문득 오래된 기억들이 차분히 떠오른다. 슬펐던 일도, 기뻤던 일도, 그 모두가 흰 줄기 사이로 스멀스멀 떠오른다.

얼마나 지극이 감정을 추스렀길래 저리도 하얀 가슴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문득 온갖 감정에 휩싸여 번민의 나날을 보냈던 지난날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마음이 정화됨을 느끼며 숲길을 걸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자작나무 사이로 허리가 굽은 자작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그다지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나 고단한 듯 허리를 구부린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지난겨울 폭설 무게를 이기지 못해 허리가 굽었다 한다.

자작나무2.jpg


자작나무는 러시아와 핀란드처럼 춥고 눈이 많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나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엔 자작나무(birch)를 북반구의 서늘한 지역에 분포하는 수명이 짧은, 장식 및 목재용 나무라고 설명한다. 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매년 잎을 떨구는 낙엽성 나무로, 빨리 성장하고 수명이 짧고, 습기와 더위를 좋아하지 않으며 서늘한 산악 지역에서 사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자작나무의 특징을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한대성 식물인 자작나무가 한국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한계선이 강원도 인제까지라고 한다. 그러나 조림한 지 30년이 넘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도 지난겨울 폭설에 허리가 휘었다.

지구온난화로 강원도 인제도 자작나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된 것일까? 아니면 수명이 다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허리가 휜 자작나무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허리가 휜 자작나무를 통해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인생을 통찰한 시인이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다. 그의 시 자작나무(Birches)를 소개한다.


자작나무

꼿꼿하고 검은 나무줄기들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걸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지네.

하지만 흔들어서는 나무를 그렇게 휘어지게 하진 못하지

눈보라가 그렇게 한 거지. 비 온 뒤 개인 겨울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거야.

바람이 불면 흔들려서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찬란하게 빛나지.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조개처럼 쏟아져 내리게 하지.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우다 보면

당신은 하늘의 둥근 천장이 허물어져 내린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나무들은 얼음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말라붙은 관목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거야.

한 번 휘어진 채로 오래 있다 보면

다시 꼿꼿이 일어나진 못하겠지만.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를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 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헤치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겠지.

눈보라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무미건조한 사실보다는

난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저렇게 휘어 놓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네.

그 아이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살아서 야구도 못 배우고

놀이라곤 스스로 만들어낸 것뿐인

여름이나 겨울이나 그렇게 혼자 지냈지.

그 아이는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을

하나하나 되풀이해서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느슨해져 축 늘어져

더 이상 올라 탈 나무가 없게 되었지.

그러다가 그는 나무에 너무 성급히 기어올라

나무를 다 땅에 주저앉지 않게 하는 걸 배우게 되었지.

우리가 잔을 넘칠 듯 말 듯 가득 채우는 정성으로

항상 조심스레 기어올라

나무 꼭대기에서 균형을 취했지.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구르며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내렸지.

나도 한때는 그런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지.

그리고 이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네.

살다 보면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도 없는 숲 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간지럽고

작은 가지가 눈을 찔러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지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지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날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어

아주 데려가 이 세상에 못 돌아오게 하면 안 되겠지.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장소,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네.

나는 자작나무를 기어올라

하늘을 향해 하얀 몸통을 타고 검은 가지까지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 위에 내려오고 싶어지네.

떠나는 것도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모두 좋은 일이지.

자작나무 흔드는 사람이 사람이 되는 게 훨씬 더 좋은 일일 테니까.


시인은 자작나무의 휘어진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한 사색을 이어간다. 세상을 잠시 떠나는 황홀함, 그 뒤에 세상살이를 다시 시작하는 새로움. 그 둘 간의 조화로운 균형과 짜릿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인은 이 세상이 사랑하기에 알맞은 장소이며, 이 보다 더 좋은 곳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 자작나무 숲에서 정화된 몸과 마음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숲을 나설 때 뒤를 돌아보았다. 흰 빛의 나무들이 반짝 빛났다. 마치 눈인사를 하는 것처럼. 자작나무는 나에게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세상살이 잘하라고 격려의 인사를 보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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