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이다. 첫눈이 오는 날이란다. 올해 소설은 눈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아침은 영도(0) 언저리를 오락가락하지만 낮 기온은 10도를 오르내리는 포근한 늦가을의 날씨다.
소설(小雪)과 함께 오는 매서운 바닷바람도 있다. 바로 손돌(孫乭)바람이다. 손돌은 고려시대 강화의 뱃사공이다. 그의 묘가 강화도 덕포진에 있으니 실존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전해오는 손돌의 이야기는 전설 같다.
광성보(廣城堡) 근처 강화해협에는 손돌목(孫乭項) 급류가 가로막고 있어 짧지만 배가 지나가기가 쉽지 않다. 특히 손돌목 바닥은 바위층이고 돌부리가 많아서 바람이 심하게 불면 배들이 암초에 부딪쳐 난파되기 일쑤다. 급한 조류가 이는 이 지점이 손돌목이라 불려지게 된 연유는 몽골의 고려 침공 때의 한 사건 때문이라 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로 피난 가게 된 고려왕 고종이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배를 타게 된다. 배가 광성진 근처에 이르자 물살이 거세어지면서 심하게 요동을 쳤다. 피신 길에 있는 왕인지라 의심이 많아 뱃사공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고 목을 베도록 명령했다. 손돌은 지형이 원래 그런 곳이라며 하소연했다. 하지만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손돌을 처형했다. 죽기 직전 손돌은 “내가 죽은 뒤 이 바다에서 거센 바람이 일어나 배가 위험해질 것이다. 하지만 내 관을 바다에 띄워 제사 지내면 바람이 그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손돌이 죽자 바람이 거세게 불고 배가 뒤집힐 정도로 요동을 쳤다. 왕은 급히 손돌의 유언대로 그의 관을 바다에 띄워 제사를 지내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왕은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뒤늦게 왕이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후 강화도 사람들은 음력 10월의 차가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부르면서 덕포진에 있는 손돌 묘에서 매년 이때쯤 제사를 지낸다.
고종이 몽골의 침공을 피해 강화로 간 때는 1232년 7월이다. 장대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여름날이라고 고려사 고종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과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전설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고종과 손돌의 이야기는 의심 많은 어리석은 왕과 억울한 민중의 죽음,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충성스런 민중의 마음이 내재된 전설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손돌은 단지 물길을 아는 뱃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왕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어 바다에 버려졌다. 그날 이후 바다는 매년 같은 계절이면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은 억울한 혼의 목소리였고, 파도는 그 목소리에 응답하는 북소리였다. 손돌의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한 생명이 바람이 되어 세월을 건너온 것이다. 강화 바닷길에 부는 바람에는 보이지 않는 한 사내의 한숨이 섞여 있는 듯하다.
가끔 생각해 본다. 세상은 왜 그렇게 많은 손돌들을 남겼을까? 억울함을 품고 스러져간 이름 없는 사람들, 그들의 바람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바람 속에는 그들의 흔적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를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고 귀 기울이고 기억하는 일이 진정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설(小雪)이다. 손돌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손돌바람은 단지 강화 바닷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그 바람을 맞이한다. 그것은 때로는 동료의 작은 경고로, 때로는 낯선 이의 외침으로, 때로는 주변인의 미약한 신호로 우리 곁을 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