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by 마정열

“여보, 파스 좀 붙여 줘.”

샤워를 마친 아내가 야윈 어깨를 드러낸 채 나에게 파스를 건넨다.

“많이 아픈 거야?”

아내의 양 어깨에 파스를 붙이며 아내에게 물었다.

“종합병원인가 봐. 안 아픈 데가 없네.”

아내의 말이 서늘하다. 안쓰럽고 미안한 감정이 속 깊은 데서 올라온다.

“나이가 들면 다 그렇지 뭐.”

나는 위로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을 한다. 우울한 감정을 억누르듯 파스가 떨어지지 말라고 꾹꾹 누른다.

“공주의 몸으로 태어나서 무수리의 삶을 살자니 몸이 고생하네.”

아내가 웃음기 묻은 말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아내는 장애인 부모 단체에서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일을 한다. 종일 선 채로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하다 퇴근을 하면 온몸이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씩씩하게 출근을 한다. 예순 가까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며 웃으며 일터로 간다. 그런 아내가 고맙다.


젊은 시절, 내가 잠시 실업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아내는 보험 외판원을 했다. 출근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인당수로 나아가는 심청을 생각했다. 나는 무능한 청맹과니로 하루 종일 몽은사를 찾아 헤매었으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저녁이면 용궁에서 살아온 심청처럼 아내는 돌아왔지만, 온종일 걷느라고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는 아내는 연꽃 속의 황후의 모습은 아니었다.

“고생했어.”

미안함에 빈말이라도 해야 했다.

“밥은 먹었어?”

도리어 아내는 나를 걱정했다. 아내의 입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나를 보는 눈매는 깊은 주름이 잡혀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실업은 끝이 났다. 그러나 아내의 진정한 싸움은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아들이 태어났다. 결혼 6년 만에 태어난 아이는 온 가족의 기쁨이었다. 아들은 걸음을 조금 늦게 뗀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 아이와 다름없는 성장을 보였다. 보통 아이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안 것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부터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언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않고 구석에서 혼자 논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그리고 결국 아들은 발달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아이를 둘러업고 치료기관이며, 교육기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눈길, 빗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좋다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고, 유치원도 아이와 함께 등. 하교를 하였다. 등산이 아이의 집중력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북한산, 도봉산을 1년을 넘게 찾아 올랐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내는 학부모 모임에 적극 참여했다. 아이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아니하여도 알 수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내는 장애인 부모 단체에 가입하여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목소리에 조금씩 힘을 보탰다.

아이는 전공과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그러는 동안 아내의 몸은 많이 상해 있었다. 조금 숨 돌릴 시간이 주어졌나 싶었는데 아내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으로 육아는 당연히 아내의 몫이거니 여겼다. 생활비며, 아이의 교육비를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돌아다녔지만, 실상을 아이의 문제를 외면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부인하지 못하겠다. 뒤늦었지만 나는 반성한다. 늦었지만 아내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자 한다.


“아프지 마라.”

“왜 내가 아파서 당신 고생시킬까 봐 겁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아내의 말에 성을 냈다. 아내가 아무 말이 없다. 잠시 서먹한 시간이 흐른다.

“그냥,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

아내가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말한다.

“무슨 생각?”

“아프지 말고,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깨끗하게..., 그런데 그게 잘 안 될 거 같다는 생각.”

“....미안해.....”

간신히 한 마디 꺼낸다.


아내는 아마 알았을 것이다. 나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마음으로 간절히 빌어 본다.


아픈 아내 때문에 고생하기 싫다. 그러니 제발 아내여, 건강하게 살자. 아픈 당신 뒷바라지하기 싫다. 그러니 진짜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나랑 행복하게 살자.




'일상의 기록, 시간의 얼굴'의 연재를 마칩니다.

보잘 것 없는 글 읽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곧 다른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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