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그들은 바다가 허락한 길을 따라 들어와 육지와 단절된 밤을 보내곤 하였다.
학원으로 한 사내가 영진을 찾아왔다.
“서영진 씨 되십니까?”
“예, 그런대요. 누구시죠?”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영진은 사내의 눈매가 서늘하다고 느꼈다.
둘은 학원 밖으로 나왔다. 앞서 걸어가는 사내의 벌어진 어깨가 영진의 눈에 들어왔다.
사내가 찻집으로 들어섰고, 영진도 뒤따라 들어갔다. 둘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누구시죠? 처음 보는 분인데...”
영진이 다시 물었다.
“정세희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사내의 입에서 세희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찻집으로 오는 내내 영진은 세희를 생각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사내의 눈빛은 강렬했다. 스포츠형의 머리에 구릿빛의 얼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희는 예전에 내가 가르쳤던 제잔데... 그런데 왜 그러시죠?”
“제자라....”
사내가 입가에 쓴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영진의 질문에 사내는 한 번도 답을 안 했다. 영진은 그것을 깨닫고 다시 물었다.
“아까부터 물었는데, 대체 누구십니까?”
사내는 여전히 자신의 말만 했다.
“조용히 경고하겠습니다. 세희를 만나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사내가 영진의 눈을 응시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내의 목소리에는 상대를 위압하는 공포의 파장이 있었다.
사내가 찻집을 나간 후에도 영진은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내는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진은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너와 처음 만난 날의 기쁨을 저 나무는 알고 있을까. 햇빛 눈부시던 날의 이별을 저 나무는 알고 있을까. 목이 메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나를 남겨두고 떠나던 너를 저 나무는 기억하고 있을까.
“선생님.”
노래를 끊고 세희가 나왔다. 영진은 세희에게 출근 전에 잠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거리로 나왔다. 땅거미가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다. 도시는 밤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세희가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모습이, 약속 장소에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영진의 눈에 들어왔다. 제부도와는 다른 세희의 모습이다. 곱게 화장을 한, 밤의 여인 세희가 자리에 앉자마자 호들갑스럽게 말을 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나 빨리 가 봐야 돼요.”
“....”
아무 말 없이 세희를 바라보는 영진에게 세희는 불안한 눈길을 보냈다.
“너 남자 있니?”
“무슨 말이에요?”
“애인 있냐고!”
세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중에 얘기해요. 지금 가 봐야 돼요.”
일어서는 세희의 손을 잡았다.
“애인 있냐고!”
“그게 선생님한테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남자가 있든 없든.”
세희가 영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세희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느껴졌다. 그대로 커피숍의 문을 밀치고 나가는 세희의 뒷모습을 영진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영진은 생각했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람. 세희에게 남자가 있든 없든. 나 역시 세희의 몸을 탐닉하는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한데.
아픈 자책이 밀려왔다.
그날 영진은 밤늦도록 혼자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며 세희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함께 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여관에 들어간 영진은 여자를 불렀다. 영진은 여자를 부둥켜안고 세희를 생각하며 섹스를 했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영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학원에 전화를 걸어 병가처리를 하고 하루 종일 여관에서 잠을 잤다.
이젠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혼자 눈 뜨고,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꿈도 없는 잠을 잤다.
그 무료한 시간의 틈을 비집고 세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나자고 했다. 영진은 세희의 전화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다.
영진과 세희는 제부도의 모텔로 갔다. 세희는 온몸을 열고 영진을 받아들였다.
새벽, 섬은 아직 어둠에 갇혀 있었고, 바다는 섬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바다를 건너 사강에 이를 때까지 세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사강의 하늘에는 그믐달이 떠 있었다.
세희가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 헤어져요.”
단문의 한 마디를 남기고 세희는 다시 입을 닫았다.
영진은 그 남자 때문이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세희를 만나러 올 때 그 남자의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해에 쫓겨 허둥지둥 사라지는 그믐달이 슬프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헤어지자는 말은 했으나 세희는 헤어짐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영진도 마찬가지였다. 세희를 만날 때마다 다시는 만나지 말라는 사내의 서늘한 말이 떠올랐지만, 자신의 몸에 새겨있는 세희의 떨림을 영진은 떨칠 수 없었다.
만남은 지속되었고, 만남을 통해 사내의 정체가 영진 앞에 흐릿하게 나타났다.
세희는 “애인이에요.”라고 말할 때 묘한 웃음을 흘렸다. 사내의 이름은 변창훈. 직업은 깡패. 아니, 금학물산이라는 통신판매회사의 채권회수팀 과장. 세희의 룸살롱도 그가 속한 조직의 관리를 받는 영업장이었다.
세희는 창훈과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창훈의 섹스는 거칠었다. 그는 마치 종말을 앞둔 사람마냥 서둘렀다. 섹스가 끝난 후에도 그는 한동안 죽은 듯이 세희의 몸 위에 엎드려 있곤 했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어.”
세희의 몸 위에서 창훈은 신음처럼 고통스럽게 말을 토해냈다.
술은 마시고 찾아온 날이면 창훈은 더욱 거친 짐승이 되었다. 욕설과 폭력으로 세희를 가두었다. 폭력으로 시작된 섹스 끝에 그는 죽고 싶다고 울었다.
그의 울음에 세희가 같이 죽자고 울면서 화답했다. 이렇게는 지겨워서 못 살겠다고 창훈의 가슴을 두드리며 세희는 서럽게 통곡을 했다.
창훈은 폭력 혐의로 2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작년에 출소했다. 출소 후 창훈은 폭력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세희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조직이라는 곳이 자기가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창훈은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막막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세희에게 풀고자 했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요. 너무도 단단히 조여 오는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요.”
세희가 말했다. 하지만 조금만 멀어지면 안쓰러워지는 그에게서 세희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은 영진이 세희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와 같았다.
영진은 세희가 구속임을 처음으로 느꼈다.
일요일, 전화벨 소리에 영진은 늦잠에서 깨어났다.
“집에 잠깐 들르거라.”
모친이었다.
오후, 성북동의 긴 골목을 걸어 집으로 들어섰다.
모친이 마루에서 영진을 맞이했다.
“쯧쯧, 하고 다니는 게 그게 뭐니?”
모친은 영진을 보자마자 혀를 찼다.
“왜 보자 했어요?”
영진이 데퉁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랑 갈 데가 좀 있다.”
모친이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으며 말했다.
모친은 영진을 앞장 세워 집을 나섰다. 둘은 호텔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거기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여인은 영진의 모친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를 했다. 모친도 여인을 반갑게 아는 체했다. 서로 안면이 있는 듯했다. 모친은 둘을 서로에게 소개해 주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왜 어머니는 나를 변변치 못한 아들이라 했을까?’
영진은 조금 전 모친이 자신을 여인에게 소개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럴 만도 하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모친이 예지엄마라고 했던 여인의 이름은 송선희. 여인이 직접 말했다. 예지는 유치원 다니는 아이의 이름이었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3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여인이 직접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모친이 자신에게 여인에 대해 알려준 것은 고작 아이 이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영진이 피식거리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영진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말하고 있다. 모든 만남은 이유가 있다고.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이혼한 홀아비와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이 마주 앉아 있는 이 사건은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 그러면 룸살롱에서 세희를 만난 것은 어떤 필연적 이유가 있었던가?
우연이다. 우연이다. 영진은 속으로 되뇌었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다. 필연이라고 온갖 이유를 붙이는 만남의 시작은 우연이다. 필연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여인은 자주 물을 마셨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긴 손가락으로 물컵을 잡았다.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영진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눈꼬리가 약간 처진 선한 눈매다. 짧은 커트 머리가 단아한 인상이다. 웃을 때 작은 볼우물이 보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둘은 밤거리를 걸었다. 밤거리의 불빛은 변함없이 화려했다. 불빛 아래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세희가 보고 싶었다.
선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영진은 세희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가 되지 않았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영진은 망연히 서 있었다. 세희와의 만남이 필연적인 만남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선희와의 만남이 우연으로 끝날지, 어떤 이유를 달고 필연적인 만남이 될지 궁금했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바다 저 멀리서 안개가 밀려왔다. 이내 섬은 안개에 갇혔다. 짙은 안개는 영진의 시야를 가리고 세상의 그 어느 사물도 형체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였다.
바다 저편에서 세희가 안개의 장막을 헤치고 나타날 것만 같다.
“세희는 왜 제부도를 좋아하지?”
영진이 물었다.
“갇혀 버리잖아요.”
세희의 대답은 간단했다.
“갇히다니?”
“물이 들어와 바닷길이 막히면 갇혀 버리잖아요. 그러면 외부의 어떤 사람도 나에게 접근할 수 없고, 곁에 있는 사람으로부터도 달아날 수 없어 그에게 전부를 걸어야 하잖아요.”
“곁에 있는 사람이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그와 함께 갇히면 외부의 도움도 요청할 수 없잖아.”
“그와 함께 고립된 공간에 들어온 이상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야지요.”
영진은 안개가 걷히고 바닷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제 섬에서 나갈 시간이 되었음을 예감했다.
선희. 평범한 이름이다. 영진은 평범함에 마음이 끌렸다.
그녀의 몸은 깊었다.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계곡의 물과 같았다. 그곳에서 영진의 몸은 방향을 잃었다. 선희는 흔들리는 영진의 몸을 편안히 받아 주었다. 선희의 몸속에서 영진은 영혼마저 깊은 땅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잠을 청하였다.
영진의 집에서 둘의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다. 영진은 그 서두름에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영진은 세희와의 관계를 생각했다. 서로의 외로움과 허기를 달래주는 관계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은 아니었다.
영진은 그렇게 쉽게 판단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이기적인 판단이었다.
울려대는 세희의 전화를 외면했다. 이제 세희와의 관계를, 온갖 이유를 달아, 우연의 만남으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진은 세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는 늘 안개와 같은 여자였고, 나는 이제 너의 섬에서 나와야겠다.
세희에게서 답문이 왔다.
헤어지자고 말한 것은 나였는데, 실행은 선생님이 하는군요. 함께 섬에 가 주어 행복했어요.
그날 밤 영진은 초승달을 보고 세희의 여윈 허리를 생각했고, 초승달이 사라진 밤하늘 높은 별 아래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며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얼굴 위의 눈물 자국은 쉬 없어지지만, 가슴속 눈물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선희의 얼굴 위에 세희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세월의 더께가 가슴의 상흔을 덮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살을 맞대고 지내는 시간이 쌓이고 세희의 얼굴은 서서히 흐려지고 그 자리에 눈매가 선한 선희의 얼굴이 조금씩 채워져 갔다.
영진의 휴대폰 액정에 낯선 전화번호가 뜬 것은 사흘 전이었다.
전화기에서 여자의 울먹임이 들려왔다.
“세희가 죽었어요”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영진은 세희가 죽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생각해 낸 여러 이유 중에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이유도 있었다. 그것이 영진의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영정 속에 세희는 웃고 있었다. 향불 연기에 웃음이 흔들렸다.
한 여자가 다가왔다. 세희의 직장 동료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세희의 휴대폰에서 번호를 찾아서 영진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세희가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여자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망설이다가 전화했어요. 세희의 가는 길을 선생님이 지켜주시면 세희도 좋아할 것 같아서요.“
영진은 세희가 동료들에게 한 자신의 이야기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술 한 잔을 입으로 털어 넣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세희가 자신을 나쁜 자식이라고 욕을 실컷 했으면 세희에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여자가 세희의 고단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세희는 창훈과 동반 자살을 했다. 그들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세희의 아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아픔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도망치고자 했던 자신의 비열한 모습을 영진은 발견했다.
세희의 몸은 가벼운 연기가 되어 이 세상과 하직을 했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몇 줌의 흰 가루는 영진의 몫으로 남겨졌다.
영진은 유골함을 품고 제부도로 들어왔다. 방죽에 망연히 앉아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붉게 타던 바다가 이내 어둠의 장막을 드리웠다. 가끔 흰 이빨을 드러내고 바다는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흰 가루를 한 움큼 움켜쥐었다. 어둠의 바다 위로 손을 내밀고 움켜쥐었던 손가락을 펼치자 흰 가루는 순식간에 바람에 흩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이승을 떠나는 세희의 울음소리 같았다.
다시 흰 가루를 바다 위로 날렸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목구멍에 걸려있던 울음이 쇳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다.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의 골짜기를 따라 울음은 긴 여울이 되어 바다를 흔들었다. 영진의 울음 뒤에 바다의 울음이 따라왔다. 울음과 울음이 만나 제부도의 밤은 흐느끼고 있었다.
길이 열렸다. 이제 섬에서 나가야 한다. 영진은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바다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건넜다. 창문을 열었다. 바다가 울울거리며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새벽, 사강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성긴 별들 사이로 그믐달이 위태롭게 걸려있다. 가녀린 그믐달은 떨리는 손을 들어 영진을 배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