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에서 페브루스까지 1월과 2월 신들 그리고 사육제
2월 입니다.
우리는 1월, 2월, 3월 이렇게 월 앞에 숫자를 붙여 평균 30일 단위로 돌아오는 시간의 단위를 표시합니다만, 서양권에서는 각 달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습니다.
January는 라틴어 Januarius 에서 왔고, 이것은 로마인이 섬겼던 여러 신 중 하나인 야누스 (Janus) 에서 유래했습니다.
야누스의 임무는 문을 지키는 것 입니다. 문은 ‘나감과 들임’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구조물입니다. 문지기의 특성상 ‘나감과 들임’을 모두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그림이나 조각에서 야누스는 두 얼굴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실제로 로마의 사람들은 문간을 ‘janua’ 라 했고, 아치 길을 ‘janus’ 라 했습니다.
문(門)의 이중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문의 속성은 ‘시작과 끝’, 더 나아가, ‘과거와 미래’라는 상반된 개념으로까지 확장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표리부동한 사람을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인 2월, February는 고대 로마 종교에서 ‘씻김’을 의미하는 정화(淨化) 의 신, Febr(u)us에서 왔습니다. 페브루스는 ‘정결’ 이외에 ‘죽음’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이 상징의 근원에는 열(heat)을 뜻하는 라틴어febris (이탈리아어 febbre, 영어 fever)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몸 안의 열은 대개 병(病)에서 온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심각한 병의 나쁜 귀결이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체열은 땀을 내는 과정을 통해 병을 이겨내는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열이 만든 땀의 좋은 귀결은, 바로 병원균과 노폐물이 빠져나간 개운하고 정결한 몸입니다. 운동이 만드는 열과 땀이 특히 그러합니다. 그러니 열의 근원, 페브루스 신은 ‘정화, 정결’이라는 상징으로도 이어진 것입니다.
패션상품에서, ‘정화’와 ‘정결’의 상징으로 독보적인 것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정결함을 만드는 땀을 생각하면, 쉽게 떠오르는 상징적 복장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복은 지금도 진화를 맹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지난 11월부터 연재된 저의 ‘땀 Trilogy’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예전 우리말 중에 흔히 이야기하는 운동복으로 ‘땀복’이 있었습니다. 영어로는 sweat suit, sweats라고 합니다. 보다 살가운 말로, 트레이닝(Training)복이 일본식 발음을 통해 고착화된 말, ‘츄리닝’이라고 불리는 옷입니다. 원래 땀복은 복싱선수들과 같이 급격한 체중감량을 요하는 운동선수들이 입던 특수기능성(?) 의복이었습니다. 땀복의 체중감량 원리는, 운동 중 몸에서 배출하는 체열의 방출을 의도적으로 억제하여 몸의 온도를 높이고, 그 결과 땀의 방출을 늘려 체중이 줄어드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땀복은 근력이 좋은 운동선수들이 내어놓는 체열을 억제하기 위해, 통풍이 전혀 되지 않는 비닐이나 우레탄 소재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결과 위생상의 여러 문제를 야기했으며, 일반 의복으로서 가져야 하는 최소의 기능성조차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패션리더에게 수용되어 진화하는 하나의 스타일이 갖는 미학적 완성과정도 없었습니다.
수년 전 장정구, 홍수환과 같은 국내 저명한 권투선수들이 ‘다이어트 땀복’ 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이야기를,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이어트 효과는 그 땀복이 아닌, 땀복의 주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효과 논쟁은 차치하겠습니다만, 이 때를 계기로 땀복의 원단은 비닐류의 산업소재에서 벗어나 적어도 통풍은 잘되는 고어텍스류의 (보통사람이 입어도 되는) 인간친화적 섬유로 업그레이드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멋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능은 멋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입니다.
패션과 예술의 공통점 중 하나는 기존의 상식이란 이름으로 쌓아놓은 벽면을 허물고 신영역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패션의 경우, 조금 러프한 일반론으로 이야기하자면, 화려한 여성의 패션이 보수적인 남성의 패션보다 이러한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군대에서 맨 앞서 진격하는 ‘선발대’를 의미합니다.) 역할을 대개 수행하게 됩니다. 그 선발대에서도 여대장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현재 상종가를 치고 있는 모델 중에 지지 하디드(Gigi Hadid)가 있습니다. 물론 다른 스타일도 잘 개척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녀의 땀복 필드에서 활약상을 소개해드립니다.
참고로, 이러한 땀복현상은 ‘비격식화(informalizing)’라는 패션트렌드의 한 지류입니다. 흔히 명품 브랜드의 ‘스포티브 라인 강세현상’이나 ‘정장에 스니커즈 현상’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것 입니다. 패션계에서는 3~4년 전쯤부터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2000년대 중후반 글로벌 경제환경이 배태한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informalization)라는 더욱 거대한 사회-경제적 메가트렌드가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한편, 남성의 경우는 아쉽게도, 제가 츄리닝을 그녀처럼 스타일리시하게 입어내는 분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남성 패션의 경우, 잘 보이지 않는 바지의 밑단에서부터 소심하게(?) ‘반역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출처: http://jimibek.tistory.com/67 [JIMIBEK, THE TASTE OF ITALY]
혹시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이 수준 이상으로, 땀복을 잘 소화하고 계시는 패피나 블로거, 또는 이웃집 아저씨를 아시는 패션 덕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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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로마인들은 정화(淨化)의 신,Februus을 기리며 정결의 축제를 열었다고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전혀 다른 기원입니다만, 고된 사순(금욕의 40日)기간이 끝나고 금욕과 금육으로 깨끗해진 몸을 다시 흥겹게 채우는 사육제(謝肉祭, Carnevale)도 유럽과 남미, 모두 2월 중순 이후에 열립니다. 종교나 사상을 떠나, 깨끗한 상태로 새봄을 맞이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한결같이 같은 것 아닐까요?
끝으로, JIMIBEK MILANO가 2월 12월부터~15일까지 RHO FIREA 에서 열리는 MICAM 쇼에 EMERGING DESIGNER 브랜드로 초대되었습니다. JIMIBEK의 이번 17FW 슈즈컬렉션이 궁금하신 분들도 메일로 연락주시면 invito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JIMIBEK MILANO 대표/디자이너
IELMANO by JIMIBEK 디자이너
IELMANO YOON
출처: http://jimibek.tistory.com/67 [JIMIBEK, THE TASTE OF ITA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