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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규 JELMANO Mar 10. 2018

조민기, 그의 빈소와 유서를 보고 나서

미투는 우리 사회가 정한 죄와 그 죄값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하주차장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빈소는 물론, 발인, 장례까지 기자들의 출입없는 비공개 형식을 원했다.





그의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은
고인이 만약 더 큰 죄를 지었어도
마지막에는 결국 그의 편이 되어
그를 변호했을 것이기에
설령 그가 그 스스로 오판에 의해 자살을 택했다하더라도
고인에게는 불명예스런 환경을 만들고,
인민재판과 같은 매서운 댓글의 돌팔매의 중심에 서게 만든 언론과 매체에
반감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의 편지에 새겨진,
... 엄격함을 사석에서 풀어주려고...
등의 변명은 여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이 그의 마지막 손 편지를 유서로 변장시킬 일은 아니다.





심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서는 실제 '이제 죽는구나'를 심각히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쓸 수도 있고
반면 그러한 의지가 없는 사람이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써 둘 수도 있다.

그리고  두 경우의 구별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실제  임박한 죽음을 가정한 사람이 쓰는 유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매우 긴 글이 된다. (재산관계 등 사무적인 내용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 명사에 비해 형용사나 부사의 수가 적다.
- 사생활, 부부생활 등 사적인 내용이 많다.
- ‘항상, 늘, 언제나’ 같은 말이 이끄는 흑백논리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 어머니, 모정에 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 자살자의 유서는 짜임새나 구성이 비교적 산만하고, 조리가 잡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는 집중을 해서 차분한 글쓰기를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내가 곧 죽지는 않겠지만 만약을 대비’ 해서 쓴 유서인 경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증오, 비난, 복수, 자책의 표현이 적거나 없다. (다시 되살아 상대방을 대할 때를 고려하기 때문에)


위 기준을 고려해서 다시 그의 편지를 읽어 본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그가 이 편지를 쓸 땐, 죽음을 심각히 생각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다만, 이제 정갈한 이 손편지는
일부 언론이 초기에 제목으로 땄던 것과 같이
결과적으로 이제 그의 유서가 되었다.





미투는

사회적 약자였던
피해자들의 한 맺힌 연대에 다름 아니다.

한 사회에는 그 사회가 만든 죄가 있고
죄는 그 죄값으로 심판받는다.

피해자들이 여론재판, 인신공격, 명예실추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가해자들에게 앙갚음을 훌쩍 너머,
또 다른 가해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을
미투의 숨은 피해자들이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언론의 이러한 폭로전 양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만약 故 조민기 씨가,
우리의 법과 도덕이 예정한
적절한 죄값을 치루게 되었다면
아직도 숨죽이고 있는
미투의 피해자들의 위축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죄에 상응하는 죄값을 정당하게 치루게 하는 것이
미투 운동의 건강한 지속에도 도움이 된다.

일부 언론은 그들의  

미투 가해자들에 대한 폭로성, 인신공격성 보도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Ps.
미리 음산한 느낌이 왔었지만 어디에다 쓸 수 있는 그런 일은 아니었다. 아니면 잠결에 무심코 전화기에 위에 그려진 자살 기사를 반쯤 감긴 눈 위에 잠시 새기고 다시 잠이 든 상태에서 꿈으로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늦은 오전 (한국시간으로는 저녁 8시 경 일 테지만 )

베니스 집에서 깨어난 나에게 이 보도는 기시감이 짙게 베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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