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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26. 2020

다섯 살 어른

2020.10.26.월

위기철 <아홉 살 인생>이라는 소설이 있다. 책을 사 둔지 오래 됐는데 아직 읽진 못했다. 갑자기 그 책이 생각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목이 생각났다는 편이 맞겠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빴다. 공복에 피검사를 하고 약을 타기 위해 병원에 갔다. 나는 콜레스테롤 약, 남편은 고혈압 약과 기타 등등 네 가지. 남편은 위내시경, 독감 주사까지 맞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집에 와서 늦은 아침 먹고 잠시 쉬었다가 각자 찢어졌다. 나는 치과, 도서관에 들렀다가 신생아용품을 사러 갔다. 매장에 있을 때 3시 알람이 울렸다.


내가 산 아기 이불과 모자


오늘 <아무튼,  3시>는 생명에 관해 쓸 참이었다. 시험관 시술로 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를 위해 아기 이불과 아기 모자를 샀다. 신이 나서 룰루랄라 집에 왔더니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손전화기벨이 울린다.  


반갑지 않은 전화다. 몇 시간 전에 헤어졌는데 분명 긴급상황인 거다. 환갑이 지난 남편이다. 신생아에서 갑자기 환갑으로 넘어오다니. 너무 뛰었다. 전화를 받았더니 엄청 반가워한다. 그래도 난 별로 반갑지 않다.

집에 왔어?

잘 됐네!

뭐가?

나 자전거 빵꾸났어!

ㅡ(어금니 깨물고, 좀전에 치과 갔다왔음)그래서?

ㅡ차 좀 갖고 와!

ㅡ어디야?

ㅡ잘 모르겠어. 일단 출발하면 알려줄게


그저께도 아들네 있을 때 아들집 문앞에서 전화를 했다. 남편이 올 때가 된것 같아 세수라도 하려고 화장실에 있다가 전화를 제때 못받았다. 며칠 만에 보며 첫 마디가,

왜 내가 전화 할 때마다 딴 거 하고 있어?

ㅡ왜 전화 했는데?

ㅡ비번 몰라서

ㅡ가족톡 맨 위에 빵이에미가 올려놨는데?

ㅡ(말 없음표)


몇 가지 사례를 더 조합해서 손아래 동서랑 통화하면서 일러바쳤다.

ㅡ나, 정말 상대하기 힘들다. 서방님은 그래도 좀 낫지?

형님, 오십보 백보에요. 우린 모두 다섯 살 어른이랑 살아요.

나보다 좀 더 도가 터진 동서의 말이다.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몇 번 통화 끝에 빵구난 자전거와 서 있는 남자를 만났다. 집에 가서 큰 차를 가져오겠다는 걸 내가 우겼다.

ㅡ그냥 내 차에 실어

ㅡ안 들어가

ㅡ들어가게 해야지. 여기까지 또 온다고?

ㅡ안 들어가잖아

ㅡ들어가면 죽는다(공부 머리밖에 없는 남자임)

죽긴 싫은지 모기만한 소리로

ㅡ세우니 들어가네


이 시점에서 위기철의 소설 제목 <아홉 살 인생>이, 우리 동서의 '다섯 살 어른'이 생각났다.


그나저나 핸드폰은 어떤 인간이 만들었냐고오~~~


사족,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 설화는 물건너 가고 다섯 살 어른이랑 살아서 자주 뚜껑 열리는 아줌마의, 분주하지만 별 영양가없는 '아무튼, 하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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