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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Dec 11. 2020

전쟁의 신

2020.12.11.금

팔랑팔랑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달여 동안 몸과 마음이 몹시 힘이 들었다.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내 방에서 칩거하였다.

우아하게 사는 법을 시시콜콜 적어놓은 책을 대출해와서 단숨에 읽었건만... 아! 역시 이론은 이론일 뿐 속지 말아야겠다.


이틀에 걸쳐 전쟁을 불사했다. 결론은 가끔 전쟁을 해야한다는 .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된다는 것.  많은 전쟁 비용을 치뤄야 한다는 것.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전쟁의 신은 아레스와 아테나이다.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났고 아테나는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의 무남독녀이다. 둘 다 전쟁의 신이지만 아레스는 게임도 안된다. 아테나는 지혜의 신이자 전쟁, 학문, 문명, 기술, 영감, 전술, 전략, 요리의 신이고 아테네의 수호신이다.



내가 풀어놓은 언설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에 따른 삶의 전체적인 통찰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불만은 요즘 며칠간 내가 반찬에 너무 소홀한다는 것, 내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는 거, 그래서 게으른 것이 참을 수 없다고 한다(단언하건데 나는 절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속으로 내가 졌다, 항복이다, 라고 외쳤다. 다섯 살 어른이와의 전쟁이라니.

표면적으로는, 무슨 말인지 접수했다.내가 이제 살짝 우울하던 것에서 벗어났으니 제대로 먹여주마, 로 마무리했다.

천하의 바보가 우리 집 어른이다. 먹을 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인터넷이 보급이 되면서 처음으로 닉네임이 필요하던 시절, 내 첫 닉네임은 별당아씨였다. 결혼을 하자 그 닉네임은 곤란해졌다. 남편이 며칠을 고심하더니 '아테나'를 가져와 부르곤 했다. 나도 흡족했다. 지혜의 여신이라니, 그 무렵의 나는 지혜로운 여자로 살고 싶었다. 지금 닉네임은 '중전'이다. (내 친구들은 그럼 우리는 무수리냐고 반발했지만 어쨌든!) 별로 재미없다. 그쪽 계열이라면 '희빈'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테나'를 헌사함으로 위험을 자초했다. 아테나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오랜 세월 전쟁을 하면 판판이 진다.



전쟁을 끝내자 초대를 받아서 밥 먹을 일이 생겼다.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초밥과 연어 스테이크, 나카사키 우동이다.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다. 야호! 내가 누군가, 전쟁의 신 아테나가 아닌가!

전쟁의 마무리는 이것으로  하고 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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