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9-25장
오늘도 나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남보다 더 높이 쌓고 화려하게 치장하며, 나만의 견고한 성을 쌓으려 애쓰는 마음. 아이의 문제집 페이지를 넘기며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내고, 누군가의 인정을 갈구하며 끊임없이 나를 포장하던 모습이 바로 그랬다. 내가 세운 성벽이 높아질수록 내 안의 평안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펼친 성경에서, 하나님은 내게 뼈아픈 질문을 던지셨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되기를 경쟁하느냐"라고. 화려한 백향목으로 궁궐을 지으며 왕이 되기를 '경쟁'하던 이들의 밑바닥에는 지독한 자기 숭배가 깔려 있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나를 앉히고, 나를 예배하기 위해 더 높은 성을 쌓으려 했던 욕망. 그것은 단순한 경쟁심이 아니라, 나라는 우상을 위해 신을 이용하려 했던 영적인 완고함이었다.
이 자기 중심성은 너무나 지독해서, 예레미야가 23년 동안이나 새벽부터 부지런히 진실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그 긴 세월 동안에도 깨뜨려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기 숭배였다. '나'라는 우상을 위해 쌓아 올린 백향목 궁궐은, 결국 토기장이의 손에서 내던져져 다시는 합칠 수 없게 산산조각 난 옹기 조각처럼 허망한 파편으로 남을 뿐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 3배에 달하는 시간인 '70년'의 포로 생활을 말씀하신다. 이 70년은 스스로는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었던 나의 자기 숭배를 강제로 중단시키시는 하나님의 '멈춤'이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한 자아를, 하나님은 70년이라는 정적 속에 묶어두고 서서히 녹여내셨다. 그것은 형벌의 탈을 쓴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이자, 우상 숭배로 황폐해진 내 영혼의 땅이 비로소 안식하며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23년의 지독한 거절을 70년이라는 압도적인 연단으로 덮으시는 그분의 신실하심이 그 긴 침묵 속에 흐르고 있었다.
나 스스로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그 '멈춤'의 끝에서, 나는 이제야 새로운 마음을 구한다. 내 안의 성벽이 무너지고 옹기 조각처럼 산산조각 난 빈자리마다, 비로소 타인의 얼굴이 보이고 하나님의 숨결이 스며든다. 하나님을 아는 삶은 나를 위한 화려한 집을 높이 짓는 경쟁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내 고집을 꺾고 내려온 낮은 일상, 느릿한 아이의 보폭에 맞춰 문제집을 함께 넘기고, 화려한 수식어 대신 정직한 문장을 고르며, 곁에 있는 이들의 사소한 안부를 묻는 평범한 순종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진짜 삶이 있었다. 내가 깨뜨리지 못한 그 완고함을 위해 대신 깨어지신 분이 계시기에, 오늘도 나는 나를 예배하던 삶을 멈추고 세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이음의 통로'로 나아갈 소망을 얻는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네 삶을 네 고집과 생각으로 세우려 애쓰지 마라. 너는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의 소중한 피조물이란다. 스스로를 지키려 애쓰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토기장이인 나의 손 위로 돌아오너라. 네가 깨뜨리지 못하는 그 자아를 위해, 나의 아들이 대신 깨어지고 부서졌단다. 이제 내가 네게 새 마음을 주마. 나를 너의 주로 알아보고, 전심으로 내게 돌아올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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