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워야만 만날 수 있는 '진짜 나'

예레미야 16-18장

by 연휘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캔버스 위에 내가 원하는 그림을 정성껏 그려가길 소망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엄마'나 '아내'라는 이름표가 내 삶의 모든 자리를 가득 채우고 나를 가려버릴 때, 문득 낯설어진 나의 존재를 마주하며 깊은 상실감에 빠지곤 한다. 이는 비단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가장'이라는 무게에, 누군가는 '사회적 성공'이라는 강박에 밀려 진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추긴다. 이제는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여자로서의 인생'을 살라고. 가족을 위한 헌신 속에 가려진 시간들을 뒤로하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너만의 자아실현을 이루라고 격려한다. 나를 돌보지 않는 희생은 자칫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라며, 이제는 네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아 너만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라고 조언한다.


'나다움'이 최고의 가치가 된 시대, 많은 이들이 나를 잃어버렸다는 아픔에 젖어 보상받지 못한 세월에 대한 '자기 연민'의 그늘 아래 머물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자아의 마지막 몸부림일 때가 많다.


사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쏟았던 시간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 멈춰 서야 했던 순간도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의 삶을 완성해가는 소중한 조각들이다. 그 시간은 결코 손해나 낭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안의 지독한 '자기 중심성'을 비워내며, 창조주의 선하신 손길을 경험하는 은혜의 과정이었다. 내 고집을 꺾지 못한 채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냐"며 주님의 주권을 거부했던 그 마음들이 이제야 못내 아쉽고 후회스럽다.


성경이 말하는 '교만'의 실체는 거창한 악행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의 고집대로 행하려는 지독한 자아의 목소리다. 이 고집은 토기장이의 집에서도 여전히 발동된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려 애쓰는 '터진 그릇'이 되곤 한다. 내가 주인 되고 싶어 항복하지 못한 자아가 진흙 속에 섞여 들어갈 때, 그릇은 형체를 잃고 무너지고 만다.


항복은 나를 지우는 패배가 아니라, 비로소 나를 지으신 분의 목적과 연결되어 '진짜 나'를 만나는 영적인 도약이다. 항복의 지점에서 나를 증명하려는 피로한 애씀은 멈추고, 주님을 향한 '순종'이 시작된다. 토기장이의 손이 나를 누르고 다듬을 때, "왜 나를 이렇게 좁은 자리에 두십니까"라고 항변하는 대신 "당신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그릇으로 빚으소서"라고 나를 내어드리는 용기다.


지나온 모든 시간이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연민에 빠져 방황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고개를 뻣뻣이 들고 내 잃어버린 세월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항복한 진흙 덩이 그대로를 토기장이에게 맡기며, 그분이 내 삶의 마디마디마다 찾아내실 '더 좋은 그릇'을 기대할 뿐이다.


오늘 고집이 부서지고, 삶의 자리에서 내가 지워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있다면 낙심하지 말자. 그것은 당신을 버리시는 신호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인생을 통해 가장 위대한 예술을 다시 시작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초대다. 내 자아의 바닥에서 온전한 항복과 순종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은 완성된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야. 너의 이름이 지워지는 것 같아 두려웠니? 네가 사랑으로 내어준 그 시간들과 묵묵히 버텨온 책임의 무게가 헛된 낭비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기억하렴. 네가 너를 지키려 바짝 날을 세웠던 그 마음을 내게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나는 너라는 진흙 위에 나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단다. 네가 너의 손에서 '자기 주인'됨의 주도권을 놓을 때, 나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진짜 너'를 완성해갈 것이야. 너는 그저 나의 손길을 신뢰하며 내 안에 머물러라.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걸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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