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1-15장
예레미야의 삶을 마주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고향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 칼을 갈았고, 하나님은 결혼마저 금지하며 곁에 아무도 두지 못하게 하셨다. 진흙 구덩이 감옥에 던져져 죽음을 기다릴 때조차 그의 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은 그를 밀어냈고, 하나님은 그를 가두신 셈이다. 사방이 막힌 벼랑 끝에 선 그의 뒷모습이 너무 시려 한참을 머물게 된다.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그를 이토록 철저한 단절 속에 홀로 두셨을까.
그것은 그를 벌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하나님의 ‘뼈아픈 배려’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술뿐만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메시지가 되길 원하셨다.
사실 우리는 힘든 일을 겪을 때 사람들의 위로에 제일 먼저 손을 뻗는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다정한 말들은 쓰린 마음을 금방 낫게 해주는 마취제 같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그 달콤한 응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세밀한 속삭임을 가리는 소음이 되기도 한다. 서로의 상처를 적당히 덮어주며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안락한 품 안에서는, 내 영혼이 진짜 들어야 할 진실에 귀를 기울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그 익숙하고 따뜻한 위로의 자리 밖으로 잠시 불러내셨다. 사람의 지지대가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과 나, 단둘만 남은 고요한 자리에서만 들려줄 수 있는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레미야를 향한 벌이 아니라, 세상의 헛된 소문에 흔들리지 않도록 그를 따로 떼어 보호하시고 오직 하늘의 진실로만 채우시려는 하나님의 ‘가장 정성스러운 배려’였다.
물론 우리는 예레미야처럼 극한의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사방이 막힌 듯한 고립을 경험하곤 한다. 나 역시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 속에 고립되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은 내 곁의 소음이 잦아들고 하나님과 가장 친밀해질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거룩한 고립’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짜 위로를 그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혹독한 외로움은 결코 우리를 망가뜨리지 못한다. 오히려 홀로 깊이 울어본 사람만이,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다. 나의 고독이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따뜻한 손길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고립의 용광로에 두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혼자라는 생각에 잠겨 있다면, 그 시간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그 막막한 정적은 어쩌면 세상의 소금을 잠재우고 당신과 단둘이 마주 앉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초대'일지 모르니까.
사람의 온기가 떠난 빈자리를 억지로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님은 그 비워진 자리에서만 들려줄 수 있는 깊은 사랑으로 당신을 채우실 것이다. 그 고독의 시간을 통과하며 빚어진 삶은, 훗날 똑같은 외로움을 겪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위로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람의 온기가 떠나간 그 빈자리를 보며 잠 못 이루었지?
하지만 그 텅 빈 공간은 너를 외롭게 두려는 곳이 아니란다. 그 빈자리는 오직 나의 사랑으로만 채워지기 위함이란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그 고요한 방에서, 비로소 내 심장 소리를 듣게 하려는 나의 초대였단다. 세상의 위로가 끊긴 자리에 내가 직접 나의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마.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의 가장 친밀한 위로가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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