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능한 열심'이 배신이었음을

예레미야 1-5장

by 연휘

'멍에'라는 단어는 그리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구속당하고, 내 자유를 억압받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멍에를 벗어던지려 한다. 하지만 그 멍에를 벗어던진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생명의 근원을 떠난 처절한 '배신'의 결과였다.


예레미야 1장부터 5장까지의 말씀을 묵상하며 이 배신의 실체를 마주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메워주신 사랑의 줄을 끊어버리고 각기 제 길로 간 백성들의 모습을 배신이라 부른다. 생수의 근원 되신 분을 버리고, 스스로 물을 가두기 위해 '터진 웅덩이'를 파는 고단한 수고로움. 내 힘으로 생존을 증명하고 내 방식대로 삶을 통제해 보겠다는 그 지독한 열심이, 사실은 나를 보호하던 안전한 멍에를 스스로 꺾어버리는 완악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님의 주권을 신뢰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눈앞의 결과가 불안해질 때면, 어김없이 나만의 웅덩이를 파기 시작한다. 내 고집대로 상황을 붙잡고 내 속도에 맞추어 주변을 다그치는 그 열심은, 사실 주님의 주인 되심을 거부하며 저지르는 영적인 배신이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기다림'과 '순종'이라는 멍에를 무거운 구속이라 오해하며 슬그머니 벗어던진 대가는 자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깨어진 평안뿐이었다. 멍에를 꺾고 도망친 곳에 광활한 평원은 없었고, 스스로 판 웅덩이 곁에서 속절없이 고갈되어 갈 뿐이었다.


이제야 살이 베이는 듯한 아픔을 무릅쓰고, 다시 내 고집을 꺾어 주님의 멍에 아래로 목을 밀어 넣는다.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나를 괴롭히려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엉뚱한 길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안전한 울타리'이자 주인을 인정하는 '순종의 끈'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저 멀리서 채찍을 휘두르며 군림하시는 분이 아니다. 멍에의 한쪽 끝을 직접 어깨에 메고 나와 함께 흙먼지를 마시며 걸으시는 분이다. 내가 지쳐 쓰러질 때 그 무거운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시는 그분의 템포에 나를 맞출 때, 비로소 멍에는 짐이 아닌 축복의 통로가 된다.


배신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이 메워주신 사랑의 멍에를 무겁다며 벗어던지고, 내 손으로 내 갈증을 해결하려 했던 모든 '유능한 열심'이 바로 배신이었다. 다시 그분의 멍에 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오늘, 비로소 나의 갈증이 멈춘다. 오늘도 나는 내 열심이라는 무거운 배신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이 예비하신 안전한 멍에 속으로, 그 기분 좋은 순종의 구속 안으로 기쁘게 들어간다.





"사랑하는 자야, 이제 그만 스스로 웅덩이를 파느라 부르튼 손을 거두렴. 네가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달리는 것은 나를 향한 배신이었단다. 이제 나의 멍에 아래로 들어와 나와 보폭을 맞추자.
이 멍에는 너를 묶는 사슬이 아니라, 나와 영원히 연결되는 사랑의 줄이란다. 네가 내 곁에서 걷기 시작할 때, 너의 갈증은 비로소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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