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쟁기가 묵은 땅을 엎을 때

예레미야 6-10장

by 연휘

추수가 끝난 겨울 들판은 쓸쓸해 보이지만, 사실 다음 생명을 준비하는 가장 치열한 현장이다. 차가운 바람에 겉면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어도, 그 속에는 생명의 씨앗을 품기 위한 고요한 몸부림이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이와 같다. 말씀을 들으며 눈물도 흘리고 고개도 끄덕이지만, 예배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순간 일상의 변화가 없는 나를 본다. 지식은 쌓여가는데 삶은 여전히 딱딱한 '묵은 땅' 그대로인 것이 괴로웠다.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쟁기를 드실 때가 있다. 쟁기를 들이대시는 이유는 나를 아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열심과 욕심으로 무성해진 가시덤불 아래, 내 진짜 모습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그 거짓된 껍데기들을 거칠게 갈아엎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 나의 정체성을 직시하게 만드는 은혜의 시간이다.


이렇게 갈아엎어진 마음의 속살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는 과정은, 마치 고난의 비바람 속에서도 서로의 곁을 지키며 사랑을 확증해가는 연인이 서로의 마음을 수시로 확인하며 깊은 확신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참 닮아있다.


평온할 때뿐 아니라 삶의 작은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 저 여기 있어요. 여전히 주님만 바라봐요"라고 고백하며, 내 믿음의 방향이 오직 주님께만 향해 있음을 증명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과 나 사이의 신뢰를 켜켜이 쌓아가는 시간인 셈이다.


이제 나는 세상의 소음과 분주함에 밀려 딱딱하게 굳어버린 '지식과 교만'의 껍데기를 깨뜨린다. 앎을 삶으로 이어내지 못했던 부끄러운 마음의 묵은 땅을 주님 앞에 내어놓으며, 마음의 할례를 구한다.


화려한 수식어 대신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라며 내 마음의 주권을 내어드리는 이 믿음의 고백이, 오늘 제 삶에서 거두어야 할 가장 진실한 '순종'의 열매임을 깨닫는다.


고난의 쟁기가 지나간 자리에 내 열심이 고집하던 낯선 새 길을 버리고, 원래 머물렀어야 할 마땅한 자리인 '옛적 길, 곧 선한 길'을 다시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묵은 땅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깊은 안식이다.




"사랑하는 자야,
쟁기가 지나간 자리가 아프고 쓰린 것을 내가 안다. 하지만 가시덤불이 걷히고 드러난 네 정직한 얼굴을 볼 때 나는 가장 기쁘단다. 내가 거두고 싶었던 진짜 추수는 네가 쌓은 지식이 아니라, 나를 향해 '주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손을 내민 너의 그 '항복' 자체였단다. 안심하렴. 너는 내 소유이고,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 농부란다. 비어버린 네 마음의 밭은 이제 내가 일할 공간이다.
네가 내어준 그 순종의 자리에, 내가 직접 평안의 씨앗을 심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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