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를 이기는 법, 결국 '항복'

예레미야 26-29장

by 연휘

살면서 마주하는 고난은 대개 피하고 싶은 불청객이다. 부정적인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들도 우리와 같았다.


나라의 기반은 흔들리고,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포로로 잡혀가는 명백한 징후를 보면서도 그들은 "곧 끝날 것"이라는 달콤한 거짓 예언에 매달렸다. 징계를 인정하라는 예레미야의 '나무 멍에'를 꺾어버리는 것이 그들에겐 최선의 자기방어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힘으로 거부한 대가는 자유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더 단단하고 무거운 '쇠 멍에'였다.


여기서 신앙의 기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들을 오히려 '좋은 무화과'라 부르신다. 세상의 눈에는 그들이 저주받은 패배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무릎을 꿇고 징계라는 멍에를 받아들인 순종의 사람들이었다. 내 고집으로 멍에를 꺾어버린 이들에게 돌아온 것이 구속이었다면, 하나님의 통치에 항복한 이들에게는 역설적인 보호가 시작된 셈이다.


사실 이 '멍에를 메는 행위'는 결국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과 맞닿아 있다. 십자가는 단순히 참아내야 할 고통이 아니라, 내 삶에 허락된 부정적인 상황조차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철저한 항복'이다. 예수님이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며 수치스러운 십자가 멍에를 지셨을 때 그것이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길이 되었듯, 우리 역시 내 뜻대로 상황을 바꾸려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예비하신 평안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멍에를 멘 좋은 무화과들에게 그곳에서 집을 짓고 일상을 살아가며 그 땅의 평안을 빌라고 하신다. 멍에는 우리를 가두는 창살이 아니라, 헛된 망상에 속지 않도록 우리를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는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재앙처럼 보이는 쇠 멍에의 본질이 결국 '미래와 희망'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늘 내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억지로 꺾으려 하기보다,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신뢰하며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고 싶다. 그 순종의 끝이 결코 재앙이 아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말이다.




"사랑하는 딸아, 너를 향한 나의 진심은 언제나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란다. 세상은 속히 고난이 끝나는 것이 축복이라 말하며 너를 유혹하겠지만, 나는 네가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나를 신뢰하며 뿌리 내리기를 바랐단다.

네가 어깨에 멘 그 무거운 멍에는 너를 벌주기 위함이 아니란다. 오히려 네가 거짓된 평안에 속아 나를 놓치지 않도록, 네 삶을 내 곁에 꼭 붙들어 두려는 나의 가장 절실한 사랑의 표현이란다. 그러니 더는 이 무게를 꺾으려 애쓰며 눈물 흘리지 마렴. 네가 내 주권 앞에 기꺼이 '항복'하며 오늘을 살아낼 때, 그 쇠 멍에는 너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고, 그 척박한 땅은 네 영혼이 안식하는 집이 될 거야.

딸아, 70년의 기다림 끝에 내가 예비한 찬란한 미래와 희망이 이미 너를 향해 달려오고 있단다. 내가 너와 함께 이 멍에를 메고 있으니, 너는 그저 안심하고 내 손을 잡으렴. 네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내가 반드시 너를 만나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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