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장 달콤한 유혹, 국제학교를 내려놓다

시스템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광야에서 발견한 ‘진짜 세상’

by 연휘

홈스쿨링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우리 가족은 인생의 큰 기로에 섰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남들은 ‘주재원’이라는 말에 부러움 섞인 인사를 건넸지만, 내 속마음은 달랐다. 나는 정말 가기 싫었다. 이제 막 한국 땅에서 홈스쿨 공동체에 적응했고, 익숙하고 편안한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기어이 그 낯선 땅으로 밀어 넣으셨다.


그곳에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내려놓기 힘든 '마지막 보루'를 마주했다. 주재원 가족에게 주어지는 황금 티켓, 연간 수천만 원의 학비가 전액 지원되는 ‘명문 국제학교’라는 선택지였다. 그것은 퇴사로 내려놓았던 내 커리어에 대해 세상이 뒤늦게 건네는 ‘가장 세련된 보상’처럼 보였다.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안락한 성벽 안으로 다시 입성할 수 있는, 완벽하고도 달콤한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그 화려한 성벽 앞에서 스스로에게 아주 잔인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눈에 보이는 시스템의 안락함이 아닌, 나를 이곳으로 이끄신 그 보이지 않는 신뢰의 끈 하나만 붙들고도 이 갓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겠는가?”


아이를 글로벌 엘리트로 키워낼 수 있는 그 견고한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은 내게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불안과 욕망,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의 성벽을 스스로 허무는 항복의 의식이었다.


북경 공항에서 마주한 대륙의 공기는 차가운 회색빛 건조함 그 자체였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낯선 천장 아래 아이와 남겨진 나는 지독한 이물감을 느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타국 땅에서 겪는 외로움은 때로 날 선 날씨가 되어 나를 몰래 몰아세웠다. 시스템의 보호를 거절한 대가는 혹독했다. 부엌문을 닫고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남들이 누리는 그 ‘황금 티켓’의 안락함을 떠올리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날들도 있었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거부한 대가는 경제적 손실과 육체적 고단함이었다. 한인 엄마들의 우아한 모임에도 낄 수 없었고, 남들이 골프와 마사지로 화려한 주재원 생활을 즐길 때 나는 오롯이 아이와 함께 먼지 날리는 '리얼 중국'의 바닥을 살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 차가운 바닥이야말로 나 자신을 가장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심연의 방이었음을, 나는 그때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모든 인간적인 안정을 내려놓은 그 바닥에서, 생각지도 못한 다정한 도움의 손길들이 찾아왔다.


Becky와 함께한 시간

나와 동갑내기였던 중국어 과외 史 老师 (사 라오스)는 단순한 푸다오(辅导)교사가 아니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그녀는 내 외로움도 래주며, 진짜 중국을 소개해주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언어 공부를 넘어 북경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진짜 중국의 속살을 만났다. 낯선 북경 땅에서 막막할 때마다 묵묵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용남 씨, 그리고 함께 홈스쿨링을 하며 든든한 여행 동지가 되어주었던 Becky의 가정까지.


사 라오스와 함께한 시간들

말은 서툴고 문화는 달랐지만, 함께 식탁을 나누고 길을 걷던 그 모든 시간 속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포기한 ‘국제학교’라는 울타리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로 엮인 진짜 공동체를 선물 받았다. 그들을 통해 나는 광야 같은 타국 땅에서도 결코 혼자가 아님을 배웠다.


기댈 곳 없는 타국이었기에 우리 가족의 예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교회마저 문을 닫아버린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우리는 거실 식탁에 둘러앉아 시스템이 줄 수 없는 영적인 야성을 길러냈다. 형식이 짜여지지 않은, 삭막한 일상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드리는 진짜 '삶의 예배'였다.



그 처절한 고립의 시간을 함께 통과해낸 끝에, 우리 부부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단단한 동역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큰 은혜는 완벽한 보호하심이었다. 평소 자주 아프던 아이가 귀국할 때까지 병원 한 번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의료 시설이 낯선 땅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팔로 우리를 덮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국제학교 티켓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만약 그곳에 다녔다면 아이는 영어를 유창하게 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학교의 담장보다 훨씬 넓은 '진짜 세상'을 얻었다. 낯선 환경에 부딪히며 이민족을 이해하고, 어떤 척박한 땅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른 것만큼 값진 교육은 없었다.


내가 쥐고 있던 마지막 욕심의 칼을 내려놓았을 때, 세상은 비로소 내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산들을 보여주었다. 가족의 깊은 연합, 그리고 보석 같은 만남들. 베이징에서의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광야였으나, 나의 포기보다 더 크신 보이지 않는 손길을 경험한 가장 영광스러운 땅이었다.


북경 왕징 소호



[연재공지]

거창한 신앙의 결단 뒤엔, 사실 먼지 풀풀 날리는 대륙의 일상이 있었습니다. 다음 화에는 예전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던 좌충우돌 여행기를 '날것 그대로' 꺼내 보려 해요. 제 흑역사가 가득해서 잘 써질지는 의문이지만, 잠시 숨을 고르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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