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밑바닥을 마주한 순간
부모가 되고 나면 묘한 '기억의 왜곡'을 경험하곤 한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과목을 척척 해냈던 우수한 아이였다고 믿어버리는 자기 최면이다. 나에게 홈스쿨링은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될,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하게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였기에 그 강박은 더 심했다.
홈스쿨 초기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여덟 살짜리 아이를 데려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지성적인’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그 시간을 잘 따라주었다. 카페의 잔잔한 음악 소리와 아이의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그 우아한 공기를 마시며, 나는 내 로망이 이대로 끝까지 완벽하게 이뤄질 줄로만 알았다. 내가 꿈꾸던 '최고의 교육'이 이토록 순탄하게 결실을 맺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육, 딱 맞는 일대일 맞춤 교육을 시켜주겠노라 자만했다. 내가 공들여 준비한 이 정교한 커리큘럼이 아이를 누구보다 앞서가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어느 날, 평화롭던 거실 식탁 위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해! 하기 싫어! 몰라!"
아이의 손을 떠난 수학 문제집이 거실 바닥으로 매정하게 날아갔다. 그 순간 내 안의 조급함이 폭발했고,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낯선 엄마의 모습에 겁에 질린 아이의 표정을 마주한 순간,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홈스쿨 한다고 아이를 하루 종일 옆에 끼고 있으면서, 정작 내가 이 아이의 영혼을 망치고 있잖아.’
그때 나는 가장 뼈아픈 진실을 마주했다. 나는 내 자녀를 너무도 사랑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정작 내 사랑은 고작 수학 문제 몇 개에 바닥을 드러내는 얄팍하고 조건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는 절대로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사무치게 괴롭혔다. 그 알량한 사랑의 한계를 목격한 뒤, 나는 무모한 결단을 내렸다.
“그래, 덧셈 뺄셈 그까짓 거 좀 늦으면 어때. 지금 안 하면 어떠니. 언젠간 하겠지...”
나는 과감하게 수학 공부를 멈추기로 했다. 연산 문제집을 풀리지 않기로 선택했다. 억지로 밀어 넣는 지식으로 아이의 마음을 병들게 하느니, 아이의 영혼을 먼저 지키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산으로 들로 나갔다. 아이와 함께 루페를 들고나가 식물을 관찰하고, 함께 킥보드를 타며 바람을 갈랐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비를 입고 빗속으로 뛰어나가 그 축축하고 생동감 넘치는 창조 세계를 온몸으로 누렸다. 수학 문제집과 씨름하는 대신, 아이가 지금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알아가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금 새롭게 배워갔다.
놀랍게도 변화는 ‘때’가 되었을 때 찾아왔다. 수학 문제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리던 아이가, 독서를 통해 스스로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나이에 가뿐하게 초졸 검정고시를 통과해 내는 아이를 보며 나는 이제 다 깨달았다고 자만했다. 아이의 성적표는 내 유능함의 증거가 아니며, 나는 이제 아이를 하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넉넉한 부모가 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낭만적인 항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의 나이가 열일곱, 열여덟에 접어들고 ‘검정고시’와 ‘수능’이라는 세상의 거대한 시계가 우리 집 거실까지 들어왔을 때, 내 안의 잠들었던 괴물이 다시 깨어났다. 초등 시절 내가 그토록 의기양양하게 치워버렸던 그 수학 문제집들을, 나는 더 두껍고 무거운 이름으로 다시 아이의 책상 위에 들이밀기 시작했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이라는 본선 도로가 가까워지자, 갓길을 걸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시 파란 사원증을 매고 질주하던 연구원 시절로 돌아간 듯, 아이의 점수와 오답률을 체크하며 정교하게 아이를 통제하려 들었다. "지금 아니면 늦어", "남들은 벌써 이만큼 갔어"라는 날 선 말들이 다시 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내 사랑의 유효기간은 고작 아이가 세상의 기준에 맞춰줄 때까지만이었음을, 수능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처절하게 확인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관찰자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은 단 한 번의 화려한 결단이 아니라, 매 순간 내 안의 불안과 싸우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지루하고도 치열한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고백한다. 내 사랑은 여전히 세상의 파도 앞에 너무나 짧고 비루하다고. 그러니 주님, 내 얄팍한 사랑이 바닥난 그 자리에 주님의 마르지 않는 은혜를 다시 채워 달라고. 아이를 내 욕심이 아닌 하늘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이 서툰 사랑은, 아마 내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미완성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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