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리더의 안목은 왜 현관문 앞에서 멈추는 걸까

내 아이 걸음을 기다리는 법

by 이음

​회사에서 나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좋다는 평을 듣곤 한다. 주춤거리는 후배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을 제안하고, 실패에 주눅 든 동료에게는 "지금은 단단해지는 과정일 뿐"이라며 어깨를 다독인다.

상대의 고유한 속도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리더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였다.


​하지만 어제, 펑펑 우는 딸아이의 눈물 앞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조급한 리더'의 모습이었다.


"엄마, 나만 모르는 것 같아"


​겨울방학, 빽빽한 학원 스케줄을 묵묵히 소화하던 아이가 결국 무너졌다.

통합과학 수업을 듣고 온 아이는 숙제를 하다 말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선행을 마친 친구들 틈에서 혼자만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아이. 상대적 박탈감과 막막함이 뒤섞인 그 눈물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럼 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 밤, 나는 아이의 흐느낌보다 더 깊은 고민에 빠져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조직원의 성장은 기다려주면서, 왜 내 아이는 기다리지 못했을까


​출근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점심시간을 빌려 학원에 전화를 걸어 퇴원 의사를 밝혔다. "지금 그만두면 진도를 못 따라갈 텐데요"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에 잠시 흔들렸지만, 어제 아이의 절망적인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굳혔다.

남들의 속도에 맞춘 강의실 대신, 혼자 인강을 보며 개념부터 천천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을 아이에게 주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자책감이 밀려왔다.

회사 후배들에게는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라고, "너만의 속도로 가도 괜찮다"라고 그렇게나 멋지게 말해놓고선, 정작 내 딸에게는 왜 남들이 짜놓은 틀에 맞춰지기를 강요했을까.

리더로서의 '안목'은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왜 작동을 멈추는 것일까.


​다시 시작하는 '믿음'이라는 교육


아이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줘야 하는 사람은 결국 엄마였다. 잘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못하는 나'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학원 진도표를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다시 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곁에서 믿어주고 응원하는 일이다.

회사에서 후배들의 가능성을 믿어주듯, 내 아이가 가진 고유의 속도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이제 우리, 남들의 시계 말고 너의 시계를 보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 보자.


​[이음의 한 줄]
"진정한 리더십은 회사 밖에서도 유효해야 합니다.
오늘 나는 내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가장 다정한 리더'가 되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가장 믿어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의 '속도'는 지금 어떠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