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거친 월요일을 디캔팅하다

시간을 견뎌 우아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by 이음

직장인에게 월요일이란 요일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하나의 '무게'에 가깝다.

주말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시작된 업무의 긴장감과 차가운 겨울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날.

코끝을 스치는 시린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퇴근하는 길, 마음속에선 "오늘은 그냥 쉴까?"라는 유혹이 수없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주 3회 운동이라는 나만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 헬스장으로 향했다.

피로에 절여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한 시간.

땀방울 뒤에 찾아오는 개운함은 월요일의 피로를 씻어주는 가장 정직한 보상이자, 무너지려는 나를 다시 세우는 의식이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남편과 소소하게 장을 봐서 들어온 저녁, 어제 마시다 남겨둔 와인 한 병을 꺼냈다.

스페인의 숨겨진 보석이라 불리는 '라 토레 드 아린자노(La Torre de Arinzano)'다.


기다림 끝에 마주한 우아한 반전


​어제 처음 이 와인을 오픈했을 때는 사실 조금 당혹스러웠다.

스페인 최고 등급인 '비노 데 파고(VP)'의 명성치고는 맛이 날카롭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입안을 자극하는 강한 타닌감은 마치 정돈되지 않은 월요일 아침의 예민한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 충분히 '디캔팅'된 오늘, 와인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날카로웠던 산미는 부드럽게 가라앉았고, 숨겨져 있던 농익은 과실향과 바닐라의 달콤한 풍미가 우아하게 피어올랐다.

전문가들이 이 와인을 두고 "기다릴수록 빛을 발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라고 평했던 이유를 그제야 온몸으로 실감했다.

​와인에게 필요했던 건 더 화려한 안주가 아니라, 그저 공기와 마주하며 스스로를 정돈할 '시간'과 '기다림'이었다.


오늘이라는 거친 원석을 깎아내는 루틴


​문득 생각했다. 우리네 하루도 이 와인의 히스토리와 참 닮아있다고.

​월요일의 우리는 어제의 와인처럼 날이 서 있고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우리에게도 '디캔팅'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오늘 한 시간의 운동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피로라는 껍질 속에 갇힌 나를 억지로 깨워 공기 중에 노출시키고 정돈하는 시간.

​거칠었던 월요일의 에너지를 루틴이라는 필터로 걸러내고 나니,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본연의 맛이 우아하게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라는 블렌딩, 매일이 다른 빈티지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경험과 감정이 섞인 '블렌딩 와인'이다.

어떤 날은 거칠고, 어떤 날은 우아하며, 또 어떤 날은 이름 모를 풍미로 가득 찬다.

​오늘 마신 와인이 '숙성 잠재력'이라는 내공을 품고 기다림 끝에 반전을 보여주었듯,

우리의 삶도 서툰 오늘을 루틴으로 잘 다듬어간다면 내일은 더 깊고 매력적인 맛을 내지 않을까.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요한 겨울밤, 남편과 마주한 와인잔 속에서 나직이 읊조려본다.

"오늘 참 거칠고 고단했지? 괜찮아, 우리는 지금 더 우아해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니까."


[이음의 한 줄]


​"지독히도 시린 월요일이었나요?

와인에 디캔팅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스스로를 정돈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당신이 지켜낸 작은 루틴이, 당신이라는 와인을 가장 우아하게 숙성시켜 줄 거예요."


#오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