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이상한 걸까, 세상이 이상한 걸까

by Lisa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2인 3각 경기하듯 잘 세팅된 육아 스케줄과 협동심이 필요하다. 우리 집 스케줄은 이러했다. 아침 8시 엄마는 회사로 출근, 아빠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출근한다. 오후 4시가 되면 시터님이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엄마가 오는 7시 30분까지 돌봐주신다.


피치 못하게 늦는 날에는 시터님께 연장 돌봄을 부탁드린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전화기를 들고 허리가 45도쯤 굽어진 채로 "늦어서 죄송하다"라고 전화를 한다. 종종걸음으로 회사를 빠져나와 만원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고 육아 교대를 위해 집으로 향한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아이는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렇게 힘을 쥐어 짜내어 두 번째 출근을 시작한다.



'애 엄마'라는 편견이 싫어서


두 돌이 채 안 된 아이는 참 많이 아팠다. 나을만하면 감기에 걸리고, 감기에 걸리면 열을 동반한 중이염이 같이 왔다. 아이가 열이 나면 맞벌이 부부는 비상에 걸린다. 어린이집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연차를 낼 것인가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회사에 있을 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당시에는 육아를 이유로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상황이 싫었다. 20대 미혼 시절 "(육아휴직 후) 쉬고 오더니 아줌마 다 됐네. 감 떨어졌네" "애 엄마들은 애 핑계로 일 안 하고 일찍 간다"는 식의 기혼 유자녀 여성을 향한 험담을 종종 들어왔다. 같은 사람이 아이만 낳았을 뿐인데 갑자기 평가가 다운그레이드 되는 이상한 현상. 차별과 혐오 표현에 경각심이 없던 무지성의 시대를 목격했었다.


그래서 더 '애 엄마라서'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필요하다면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회사에서 야근을 못하면 집에 와서 아이를 재운 후 새벽까지 남은 업무를 처리하는 날도 잦았다. 적어도 아이 때문에 일을 못한다는 이유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세상에 적응된 사람들


돌이켜 보면 모두가 야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9 to 6로 해결되지 않는 업무량이 문제였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사람을 평가했던 일부 사람들이 무례한 거다. 가끔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진짜로 세상이 이상한 경우도 있다. 무조건 내 탓만 할 필요는 없다.


당시 나는 내가 아닌 남의 평가에 삶의 기준을 두었다.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남에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말 그대로 돌아서면 다신 안 볼 '남'인데 말이다. 그때는 왠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내가 무능력해지는 기분이 들어 힘을 빼는 것이 참 어려웠다.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이만하면 잘하는 거지 뭘 더 어쩌라고!"라고, 내 스스로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모두가 내 편이 되어줘도 오직 나만이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나에게 관대해지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 나를 다독여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이가 성장하듯 부모가 된 나도 함께 성장하는 모양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렇게 나를 갈아서 만든 워킹맘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갈 무렵, 나의 첫 번째 퇴사를 앞당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내에 반복적으로 지각하는 사람이 몇몇 있던 모양이다. 그들에게 페널티를 주기 위해 도입된 아주 기묘한 특단의 조치. [1분이라도 지각할 시 연차 사용에 불이익을 받는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워킹맘, 워킹대디의 연차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플 때, 방학, 재량 휴일 등 갑자기 발생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려면 '쉼'을 위한 연차 사용은 사치다. 아끼고 아껴도 연말에는 늘 남은 연차가 없어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연차 사용 불이익이라니? 어차피 지각 같은 거 안 했으니 괜찮겠지 싶다가도 과도한 통제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울고 있는 아이의 잔뜩 젖은 기저귀가 눈에 들어왔다. "기저귀만 얼른 갈아주고 가자" 했는데 시계를 보니 지금 안 나가면 늦을 것 같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잠시 고민하다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내버려두고 기저귀 하나 갈아주지 못한 채 쫓기듯이 집을 나섰다. 그놈의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연차를 지키기 위해서.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꾹꾹 눌러 담았던 서러움이 북받쳤다. 출근 시간은 1분도 어겨서는 안되지만 야근은 의무와 책임감으로 포장되는 현실도, 혹여라도 '워킹맘은 이래서 안 돼'라는 소리를 들을까 아등바등했던 순간도 전부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환승 이직,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을까


그렇게 마음먹고 한 달 뒤. 이른바 환승 이직에 성공했다.


다음 회사를 찾는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육아 프렌들리 할 것. 두 번째, 유연근무가 가능할 것.

그리고 정말 타이밍 좋게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를 찾았다. 이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업데이트해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곧이어 들려온 서류 합격 통보. 약 한 달여간에 걸친 입사 전형들을 모두 치르고 나서 최종 입사가 확정됐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직을 앞둔 마음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오래 다닌 조직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 선택이 나에게 터닝포인트가 될지, 새로운 고생길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지쳐있다면,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리프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을까? 아니면, 낙원은 결국 인내하고 돌파구를 찾아낸 자에게만 나타나는 선물일까.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 작은 물음표를 품고서 새로운 조직에서 워킹맘 인생2막을 시작하게 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