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든 마음의 지옥

죄책감 많은 워킹맘의 셀프 토닥 프로젝트

by Lisa


"스트레스가 많아서 마음이 체했네요. 마음 소화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직장인 10년 차, 워킹맘 3년 차에 얻은 나의 마음 처방전.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흐르고, 이유 없이 불안한 감정이 파도처럼 덮쳤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제 몫을 다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항상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문득, 나의 모든 신경과민의 표출이 결국 아이에게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은 안 됩니다"


육아휴직이 끝나갈 무렵, 복직은 다가오는데 어린이집 0세 반 자리가 없어 차로 10분, 걸어서 30분 걸리는 옆 동네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아침 일찍 등원은 아빠가 맡기로 했지만 하원이 문제였다. 너무 어려 어린이집 차량 이용도 불가하단다. 거리가 먼 탓에 하원도우미도 구해지질 않았다. 양가 부모님은 멀리 떨어져 있어 전혀 도움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복직할 회사에 급여를 삭감하고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대답은 "No".

나만 육아를 이유로 단축근무하게 되면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따지고 싶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곧 복직하는 입장에서 오래 다닌 회사를 상대로 문제 제기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현실에 순응했다.


복직 D-7.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을 또 한 번 옮겼다. 아이의 하원을 맡아 줄 시터님도 겨우 구했다. 아이가 이 모든 변화에 잘 적응해 주어 안쓰럽고 고마웠다. 본격적인 워킹맘 생활의 시작이었다.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복직 첫날 느낀 감정은 한 마디로 짜릿했다. 너무나 강렬해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모처럼 만에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었다. 복잡한 지하철을 빠져나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들고 가는 기분은 황홀했다.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내가 일했던 그 자리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다.


감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제약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해방감, 온전하게 밥 먹을 수 있는 보장된 점심시간, '아기 언어'가 아닌 성인의 언어로 대화 나누는 것도 모두 다 좋았다.


일을 쉬는 1년 5개월여 사이 회사에는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내 자리가 굳건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기뻐했던, 그저 모든 것이 좋았던 하루였다.



스스로 만든 지옥 굴레의 시작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주 빠르게 냉정한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동안 회사를 떠나 있었던 탓에 다시 업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업무 스킬이나 역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느긋하게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


출산휴가 전 물 올랐던 역량 그대로 선배로서 후배들을 능숙하게 이끌어 주어야 했고, 연차에 맞는 업무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도 시작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는 동안 나와 함께 길을 걷던 내 동료들은 어느새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멋진 리더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오히려 몇 걸음 후퇴했는데 그들은 저만치 앞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조바심 나기도 했다. 출산 후 한껏 낮아진 나의 자존감 때문에 그들이 더욱 빛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누구도, 단 한 사람도, 나에게 '잘해야 한다'라고 등 떠민 적이 없다. 그저 나 스스로가 나를 채찍질하고, 왜 이거밖에 못하느냐 구박했을 뿐이다. 회사에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집에 와선 아이에게 최고의 엄마가 되어 주는 환상 같은 이미지를 품고서.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나에게 실망하고 좌절했을 뿐이다.


언젠가 후배가 내게 물었다. "누가 그렇게 선배를 괴롭혀요!"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말했다. "내가. 내가 나를 스스로 괴롭혀"


그렇게 나는 일도, 육아도, 전부 다 못하는 '자기 효능감 제로' 상태의 기분을 느끼며, 스스로 만든 지옥 속에 기꺼이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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