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를 뺏긴 사람들에게

by 지구 사는 까만별




주말에 근교로 나가 가을 속을 거닐었다. 선선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와 코스모스에도 더 깊어진 계절의 볕이 소복하다.


볕에 시야가 몽롱해지는 와중에, 핑크 뮬리 군락지가 뿌옇게 드러난다. 다가갈수록 오묘하고 멀어질수록 선명한 자태가 드러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와 반대여서 더 아름답다. 마치 멀어질수록 아름다운 우리네들의 인생처럼. 분명 살아있는데 바스락 거리며 맥없이 붉다. 화양연화를 지나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청춘과, 화양연화를 이미 지나 조금씩 침전해가는 인간과 닮아있어서 자꾸만 눈이 간다.


핑크 뮬리를 처연하게 표류시키는 바람은 어엿한 가을이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아직 여름이다. 하지만 저 산도 화양연화는 아니더라도 마지막 중흥을 불태우는 인간처럼 가을을 피울 것이다. 왜인지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나와, 어떤 희로애락도 없이 색채가 사라져 무감각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화양연화 못지않은 중흥으로 색색이 피어날 수 있기를 계절을 타는 바람에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