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에서

by 지구 사는 까만별




스승님, 평안하신지요.

스승님을 부르고 싶었지만, 오늘 제게는 떠오르는 얼굴이 없습니다. 스승들의 불완전함 때문일지, 제 마음에 관용이 부족해서일지...

어느 대답이 나와도 오늘 밤은 공허할 듯합니다.


그러나 공허한 밤하늘이 진공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차가운 기온과 빽빽한 기압이 있기에, 미약한 김들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뜨거움을 비집고 나오는 찜통 속 빼곡한 새벽 만두와 퇴근길의 잉어빵. 건조한 계절을 수채 하는 습윤한 삶의 흔적이 포장마차에 덕지덕지 비칩니다. 세상이 비어있지 않음을 가르쳐주는 겨울의 화가들을 내 오늘은 스승이라 부르렵니다.


인간의 7할은 물이라지만, 스승으로 떠오르는 것이 증기들밖에 없으니 다소 질척입니다. 무한히 많기에 결국 부재한 나의 스승님. 몇 건의 아픈 사건 사이에도 웃는 날이 많았던 제 생을 닮았습니다. 알록달록한 물감을 받아내는 흰 종이도 무채색이듯이...


그렇기에 스승님.

저는 조울증은 증상이 아니라, 삶의 경향이라고 감히 고백합니다. 희고 검은 건반을 함께 눌러 화음을 만드는 피아노처럼,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삶... 역시 한참 울다가도 친구를 만나 웃고 있는 제가 유리에 비칩니다.

사흘 전에 울고서 오늘 웃고 있다면, 현재의 웃는 얼굴과 사흘 전의 울음 모두 이질적으로 유리에 섞이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면으로 이루어진 반사체입니다. 유리에 어린 환영들 모두 마침내 제게로 걸어옵니다.


흐린 날이 있기에 맑은 날이 있고,

꽃이 있기에 낙엽이 지고,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는

찬란하고 잔혹한 순환의 진리.

그 앞에 조울을 오르내리며 삶을 받아내는

약한 제가 있습니다.


제 삶처럼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스승님의 얼굴 앞에 밤이 끝나갑니다.

새벽 앞에 어느 하나 선명하진 않아도 어느 것도 희미하지도 않습니다. 오늘은 구름이 없을 예정이라던데, 그럼에도 건물에 의해 내내 응달인 어느 구석진 그늘도 기억하려 합니다. 햇빛이 빛나는 건 그늘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의 무수한 웃음들이 그러했듯이...


살아가는 이는 모두 우리의 스승이라지요.

그대의 스승이 되고자, 오늘 아침을 기꺼이 일어나 보렵니다. 내일 밤은 공허하지 않도록...


스승님, 오늘도 검은 건반을 사랑하며 멋진 연주를 하다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