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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27. 2023

물려줄 건 마음밖에 없어서




흰 테이블마다 꽃이 한 송이씩 놓여 있습니다. 하얀 테이블은 인파로 채워져 원래의 문양을 알기 어렵습니다. 무지갯빛 풍선은 공간을 부유하며 제법 불규칙적인 사람들의 궤적들을 구경합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하늘빛 드레스와 구름을 닮은 하얀 모자를 착장한 아기가 아장아장 등장합니다. 익숙한 품에서만 경계를 풀다가 맨 앞에 자리한 유일하게 작은 의자에 쏙 들어갑니다.



아기는 꿈에서도 못 봤던 커다란 식탁을 마주합니다. 상 위에는 알록달록한 것들이 잔뜩 올라가 있고, 상 너머에서 사람들이 풍선처럼 한가득 떠올라 자신을 흐붓이 바라봅니다. 아기는 처음 보는 흥성거리는 풍경에 엄마를 향해 자꾸만 고갤 돌립니다.

낯을 가리던 아기는 돌상에 놓인 신기한 물건들을 잡고 싶었지만, 뜨거운 시선들에 통통한 손은 한참을 서성거리다 엄마 품으로 돌아갑니다.

끝내 돌잡이를 못해도, 아기를 축하하는 목소리들은 꺼지지 않습니다. 축하 팡파레가 퍼질 때 엄마는 진정한 자신의 첫 생일을 맞은 것만 같았습니다. 어릴 적 엄마는 가정 형편상 돌복을 입고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엄마였지만 아기의 하늘빛 드레스 못지않게 사각거리는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찍은 돌사진이 엄마에게도 있습니다. 막내조카에게 당시 미혼이던 막내고모가 몰래 해주고 싶었던 첫 돌 사진.

읍내 의상실의 드레스와 사진관 촬영 비용까지 미리 알아두고, 모자란 돈은 마당에 널려있던 잔디씨를 몰래 들고 나와 팔았습니다. 한여름에 아이와 잔디씨를 들쳐 매고 새벽같이 나왔던 고모가 만들어준 셔터소리...

흑백사진이지만 엄마의 첫 생일을 선연하게 남길 수 있었던 어느 가족의 최선이었습니다.



잔치 다음 날, 아기는 엄마와 아빠가 다시 준비해 준 어제와 같은 물건들을 상 위에서 보았습니다.

 "어? 평소에 엄마가 읽어주던 게 있네?" 아기는 그렇게 작은 책을 망설이지 않고 집었습니다.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서 찍어준 엄마의 돌사진과 헐렁한 상황에서야 완성된 아기의 돌잡이... 

고모처럼 아기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었던 엄마였는데, 아기의 첫 돌은 한 가족이 모인 작은 상에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온전해진 돌사진의 의미가 생경하여 다시금 빛바랜 사진으로 그날을 바라봅니다.



그날 엄마는 잠든 아기를 포옥 안습니다. 언제나 마음만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지났기에 아기에게는 풍족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돌사진에 담긴 것이 결국엔 부유한 마음이듯이, 아기의 돌잡이를 마친 건 가족의 평안임을 밤의 고요가 알려줍니다. 가족에게 마음을 물려받아 아기에게 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기도로, 아기와 엄마는 두 번째 생일을 너끈히 기다려갑니다.













돌잡이 이후 해마다 함께 완성하던 생일 중 다섯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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