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꼬불꼬불 파마머리의 얇은 목소리들이 산으로 향한다. 형형색색의 등산복과 수분이 줄어가는 피부. 이파리가 숭숭 빈 가을 나무들이 산으로 돌아오고 있다.
단출한 나무줄기가 무슨 연유로 이 외진 곳까지 찾아왔을까. 엄마가 되어서도 친정을 찾듯, 씨앗이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무는 기도할 수 있는 식물들의 친정을 향해 하늘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
돌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파른 돌계단에 쪼그라든 몸이 뒤집힐 듯 위태롭다. 그렇기에 할머니는 몸을 납작 엎드린다. 세상에 태어나 여태 시간에 순응해 왔듯이, 보이지 않는 내일에 신이라도 부르짖으며 손과 발이 하얗게 트도록 돌을 어루만지며 오르기를 반복한다.
구불구불한 산길 경사가 심해질수록 주름지게 거친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들숨 날숨에 폐가 아파온다. 오를수록 저 아래 세상과 멀어지는데 저 아랫마을 핵교에서 날밤 없이 공부할 강아지들 얼굴이 산허리를 칭칭 휘감는다. '저 도서관에서 고생만 할 낀데, 내가 이거라도 해야지'. 할머니는 허리 한 번 펴고 다시 부처를 만나러 간다.
처지가 비슷한 할머니들의 거친 호흡으로 가득한 땅과 달리, 산 위에 펼쳐진 저 푸른 호수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솜사탕을 바람에 씻어내고 있다. 깨끗한 저 호수도 바닥은 누구 하나 날아오르지 못하고 가라앉아있다. 한 세월 동안 만난 인연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굳은살 가득 바퀴를 굴려온 여인. 간절하게 나부끼는 아련한 풍경소리가 돌에 단단히 박힌 할머니의 생을 위해 조용한 노래를 부른다.
지문을 씻어내는 산바람이 풍경소리를 묻힌 채 땀방울을 수시로 닦아줄 때 즈음, 저 멀리 돌부처가 보이기 시작한다. 고행의 마지막 계단 위에는 나무들 대신 좁은 평지가 있다. 반석 위에 커다란 돌부처님이 있고 부처님 아래서 등산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기도에 마음들이 들끓는다. 언제나 고개를 엎드렸던 할머니들도, 언제나 허리 한 번 굽히지 않던 할아버지도, 산 아래서 땀을 흘리는어린 손주들을 위해 백팔 번의 절을 한다. 움푹 주름진 입가의 억세게 살아남은 할머니. 그 간절함에는 오로지 자녀만 남아 온몸에 구슬땀이 맺힌다. 언제나 자비로운 얼굴의 부처님 손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중생의 땀을 식힌다. 자녀의 기도로 빼곡한 종이가 자연의 마음에 의해 기운차게 나부낄 때 즈음 백팔 배가 끝난다.
절을 마치고도 할머니의 마음은 산 위에 여전하다. 산 아래 밥을 하러 내려간 할머니의 마음이 한 장의 기와로 쌓여 굳어간다. 차가운 땅에서 여남은 숨을 쉬는 흐릿한 맥박의 낙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