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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an 15. 2024

고양이 버스는 만화에서만 봤었는데!




어느 여름날, 소녀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버스의 문을 두드렸어요. 그러자 버스는 말했어요.

"나는 미래를 여행하면서 과거를 볼 수 있는 마법 버스야. 나와 같이 여행하지 않을래?"

소녀는 엄마의 손을 꼬옥 잡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어요.


버스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있었어요. 열 명 정도의 중년이었는데,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중학생 소녀를 향해 모두 온화한 미소를 꺼내 주었답니다.

소녀는 과거 여행에 신이 나서 버스 창문이 마법을 보여줄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어요. 버스가 큰 입으로 잠시 소녀를 내려놓을 때면, 깃발을 따라 쫄래쫄래 걸어갔답니다. 마법을 다 써서 창문이 어두워지면 소녀는 내일의 과거 여행에 대해 적혀있는 주문서를 읽었어요. 소녀의 엄마는 시간여행의 풍광보다 더 소중한 마법에 눈을 떼지 못했답니다.


잠을 자는 버스에서 내린 소녀는, 숙소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했어요. 지도만 있다면 소녀의 여행은 끝나지 않으니까요. 버스에서 새로 습득한 문명을 숙소의 밝아진 문명을 매개로 정리하며 소녀는 한 번 더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창문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익숙한 별이 소녀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소녀는 눈을 감고 별들의 안내를 받아 내일로 향하는 여행을 조용히 떠났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처럼 잠이 든 소녀를 엄마는 양치기처럼 바라보다 잠이 들었어요. 소녀와 어머니의 머리맡에는 소녀가 하루 동안 과거를 보고 짜낸 시가 별빛에 작게 빛나고 있었답니다.


다음날 별들의 인도를 무사히 받은 소녀는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낯선 식탁에는 낯선 음식들이 소녀를 위해 차려져 있었어요. 엄마가 매일 차려준 밥과 국 대신 빵과 수프를 먹으며 소녀는 작은 풍선처럼 배를 불렸습니다. 버스도 수프 대신 기름을 먹고 조금씩 무거워진 사람들을 태웁니다.


여행이 깊어갈수록 소녀를 제외한 일행들은 조금씩 마법에 피곤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희귀한 중2병을 다 본다며 덕담해 주던 어른들의 목소리에는 중간중간 피로가 묻어나기 시작했지요. 깃발을 들고 과거를 안내하던 안내자 아저씨는 일행의 피로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의 피곤함으로 인해 도시의 풍광을 놓치지 않기를 바랐답니다.


그러다 안내자 아저씨는 소녀의 수첩에 적힌 주문을 발견했어요. 주문서에는 여태 마법으로 만나왔던 문화들에 대한 시가 적혀있었습니다. 이 주문이면 여행 초심자들의 피로를 재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내자 아저씨는 소녀가 주문을 외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안내자 아저씨의 소리를 키우는 요술봉을 전해받은 소녀는 차분하게 별빛 아래 쓴 주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들의 박수를 받으며 요술봉 앞에서 첫 목소리를 꺼내본 소녀는 조금씩 날개를 펴며 차분히 시를 읽었어요. 다 읽은 후 "이 시는 어떤 뜻이니' 물어보는 질문에 소녀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봤던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설명을 마치자 박수와 초콜릿이 마법처럼 쏟아집니다. 소녀는 박수보단 초콜릿이 조금 더 좋아서, 매일 아침버스에서 요술로 받아낸 초콜릿을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습니다. 엄마는 그 미소가 가장 소중한 마법이라 생각했어요.


헤어지기 전 깃발을 든 안내자 아저씨는 자신이 설명해 준 것들이 다 녹아있다며 또 다른 여행 초보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며 소녀의 주문서를 모두 받아갔습니다. 주문을 받고서는 더 이상 자신이 안내해 줄 수 없는 소녀를 위해 힘차게 깃발을 흔들어주었답니다.


익숙한 동네에서 익숙한 하늘을 보며 소녀의 엄마는 생각했어요. 소녀를 위해서 탄 버스였지만, 사실 마법을 볼 수 있어 행복했던 건 소녀의 엄마 자신이 아니었을까...


소녀의 엄마는 소녀와 버스를 탔기에 오늘날 자신이 서투르게나마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겁이 많은 소녀의 엄마가 낯선 환경을 이겨내고 여행을 떠났기에 얻은 보물입니다.


미숙한 마법을 써 내려가다 소녀의 엄마는 소녀를 바라봅니다. 피로 대신 희망을 베어 먹으며 주문서를 썼던 소녀는 지금도 버스를 타고 더 커진 학교로 비행을 떠납니다. 학교에서 현실이란 마법을 배우다 집에 돌아와서도 틈틈이 주문서를 쓰는 소녀. 소녀는 버스를 탈 때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내내 여행을 다닐 모양입니다. 







P.s

한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수없이 만났을 '칭찬과 미소'라는 이름의 키다리아저씨들이 있었기에, 아이의 순간이 동화처럼 펼쳐질  있었겠지요.

 누군가의 키다리아저씨로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분들께 소녀의 엄마로서 감사를 전합니다.

그해 스페인여정 버스에 함께 탑승해주신 키다리아저씨분들께도 고마움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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