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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Oct 31. 2023

크로키, 돌판 위에 수채-2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기에, 떠나감을 응원해야 하는 침착한 마음이 있습니다. 해발 고도가 높아질 때마다 나의 마음을 한 발씩 비워갑니다.


아이가 꼬마 시절에 이 산을 함께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한 손엔 주전부리를 들고, 나머지 손엔 부모 손을 수시로 붙잡던 작은 아이. 신선 같던 어린이는 가파른 길에도 전혀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과 서로 날아오르며 산새 마냥 위로위로 재빠르게 올라 산 아래에 웃음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습니다.


 내려다보는 어른들의 눈빛들에도 지지 않고 나풀나풀 지면에 가벼이 튀어 오르던 아기새. 허공을 가로지르는 산새를 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꿉니다. 아직 솜털이 가득한데 하늘은 위험하지 않겠니...

그러나 아기새의 날개는 하늘을 날기 위해 있는 것. 나무가 우거진 숲에선 더 먼 비행을 하긴 아직 어렵겠지요.


 아기새를 돌보던 청청한 내 여름은 이제 가을을 맞아 긴 숨을 접었습니다. 푸른 밤은 꿈처럼 사라지고서, 숲이 우거진 기도의 계단에서 눈을 뜹니다. 이젠 눈을 감으면 꿈처럼 간절해지는 나의 아기새를 생각하며 산을 오릅니다.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어른으로 걷기 위해 나도 아기처럼 세상을 걸었습니다. 삶에서 오늘은 언제나 처음이라 계단이 무너질세라 서툴게 디뎌보는 삶의 계단들. 뒤돌아 올라왔던 계단을 돌이켜보면, 두 다리와 아기새가 있어 위로 오를 수 있었다는 건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앞에 놓인 오늘의 오르막길. 굽은 등으로 납작하게 돌산을 오르시는 어느 할머니의 간절함을 업고서 나도 한 발씩 동네를 거슬러 오릅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드려온 치성과, 바람이 묻은 풍경 소리와, 투명하게 말라가는 장독대에 스스로  정갈하게 받은 빗물 한 대접도 간절히 모아진 두 손이 있습니다. 굽이굽이 굴곡진 주름 가득한 얼굴로 집중하느라 입술을 오므린 노년의 얼골들.

그런 간절함이 머무는 공간이면 어디서나 세워지는 바람의 제단입니다. 나와 같은 산을 불편한 무릎으로 올라온 선대들이 아른거립니다.


보이지 않는 염원들을 밟다 보니 어느새 말수는 줄고 기도 소리와 옷감의 마찰 소리가 선명해집니다. 올라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든 게 덧없으나, 어느 것도 하찮은 게 없습니다. 창공을 날아오르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도, 가족과 외식 위해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는 노동자들도, 모르는 가족들의 저녁을 먹여도, 정작 자식의 깨어있는 순간을 며칠간 못 보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요리사도...

그리하여 산 아래는 오늘도 빛으로 가득합니다. 저 불을 항로 삼아 아기새는 이밤에 야간비행을 준비하는 거겠지요.  오늘도 아이의 밤이 너무 어둡지 않기를.  세속과 멀어져 더욱 선연해진 그리움의 온도로, 기도의 손길을 지핍니다. 자식이 무탈하게 성장한 기도의 순간들이 향이 되어 조금씩 구름을 향해 올라갑니다.



 도서관 불이 꺼지고 아기새가 저벅저벅 집을 향해 걸어옵니다. 묵직한 현실이 담겼을 저 책가방을, 구름 위로 숨은 나의 기도가 대신 들어주기를.

전원 소등된 우리 집에, 다시금 기도의 촛불이 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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