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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May 20. 2024

엄마와, 들풀과, 병환과 세계일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초록 비린내가 산천에 진동하였다. 병풍처럼 펼쳐진 고랑과 이랑 사이로 아지랑이가 어른거리고, 땅속에서 가마솥마냥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소생의 빛이 아이는 미웠다. 겨우내 살림을 돌보던 축축한 엄마의 손은 결국엔 아이의 잠든 머리통에서 손을 떼고야 만다. 그러고는 고동색 치마에서 알록달록 몸빼 바지로 아이가 깰세라 조용히 갈아입고 문을 닫는다. 지붕 아래에서 자는 아이를 위해 밀짚으로 작은 차양을 만들고선 밭을 향한 긴 외출을 나선다.     


 엄마는 오래도록 갇힌 삶을 살았다. 아지랑이 자욱한 봄 사이로 한 번 집을 나서면, 엄마는 겨울이 올 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서 같은 밭에서 일을 해야 했다. 농작물에 발이 묶여선 다 자라기 전까지 자유로운 두 다리가 있어도 다른 동네를 쉽게 갈 수 없었다.

 그리고 겨울밤이 오면 집을 떠나지 않는 보드라운 볼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엄마를 막았다. 봄이 완연해질 때까지 양 볼이 빨개져 볼그스름하던 엄마. 외풍이 문풍지를 움켜쥐고 밤새 펄럭이던 집에서, 한 사람에 의해 마당 한켠 장독대 물김치가 자글자글 익어가고, 농번기 때는 졸고 있던 재봉틀이 겨울엔 신나서 박음질을 하고, 온돌방 아랫목이 매일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겨울이면 엄마 볼은 왜 늘 빨간 걸까? 쉼 없이 안팎을 드나들지만, 친정 한 번 맘 편하게 못가지만, 생색 한 번 내지 않는 엄마의 수고를 알고도 모른 채 아이는 엄마를 다리 삼아 사계를 건너갔다.


 그리고 모든 사계를 자립할 수 있게 된 자식과 작물을 독립시키고도, 무리해 온 엄마의 몸은 엄마를 동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친정집에도 어른들께 허락받고 야 했던 엄마는 여유로운 어른이 되었는데도 이제는 심해멀미로 인해 동네 밖을 선뜻 나서지를 못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허전해하던 꼬마는 자라나 엄마를 안쓰러워하는 여인이 되었다. 집에서나 밭에서나 쉬지 않고 일만 해온 엄마에게 무슨 낙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자식들 키우는 보람으로 살았지. 살림도 쪼매씩 늘리면서 너희들 는 거 보면 얼매재밌는.’     



 아기새들이 거의 성장하면서 세간이 조금씩 비어 가는 둥지에서 엄마는 조금씩 동네 여행을 떠났다. 들에 다녀오면서 점점 거칠어져 가는 엄마 손에는 이따금 여린 들꽃이 들려있었다. 여린 들꽃은 마디 굵어지고 거친 손에 딸려와 안방 티브이장 위 사이다병에서 생기를 뿜었다. 엄마에 의해 뿌리에 박혀있던 꽃은 동네에 갇힌 엄마 대신 동네의 끝에서 끝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꽃의 여정을 듣기 위해 풀꽃을 가까이 두던 한 여인의 미소는 초록의 사이다병에 매일매일 비추어졌다.     


 남은 새마저 푸르르 날아가 버린 후, 사이좋은 노부부로 백년해로할 것 같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생각보다 빨리 강 건너로 여행을 떠나기 마련이다.  홀로 남은 어질고 부지런하던 주인 할머니를 잃고서 어리둥절한 지금의 빈집처럼, 맑은 날 해갈을 도와주던 아담한 할머니 안부가 궁금할 마당의 라일락나무도 애잔하게 스친다.

 비에 의해 자생하며 텃밭의 할머니를 넋놓고 기다리는 이 봄날, 잡초를 뽑고서 사이다병에 담아 살려주기 위해 집까지 풀에게 여행을 시켜주던 중년의 여인을 기억한다. 해 질 녘 함께 들길을 걷고선 남은 숨을 사이다병에서 마저 숨을 고르게 해 주던 굵어진 엄마 손은 함께 손을 잡은 꽃에 의해 저녁 내내 생기 있고 향긋했다.     



 엄마가 병상에 눕기 1년 전 친정 안방에서 3대의 손을 찍은 적이 있다. 굽이굽이 살아낸 세월만큼 마디가 굵고 주름진 겨울이 된 엄마, 서서히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의 나, 그리고 완연한 봄의 내 딸. 그러나 가을과 겨울의 손이 봄과 꽃을 잡았으니 어쩌면 언제나 봄의 손일 것이다.


 보드라운 봄을 기르기 위해 늙어가는 손은 사실 누구보다도 진한 여행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비록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진 못했어도 자립이란 여행을 위해 평생 웃으며 수고해 준 다정한 나의 엄마!  밭에서 집으로, 부엌에서 아이의 머리 위로 오가던 부지런한 손의 여행을 나는 오늘 짙게 슬퍼한다. 그리고 멀미를 느낄 필요도 없는 이 글 위에서나마 엄마와 동행하는 각종 형태의 여행들을 따스히 상상한다.          








병상에 눕기 1년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든든한 겨울같아 슬프던 손은 지금은 가장 작은 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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