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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Sep 09. 2024

보름달을 베어 물면 무엇도 굶주리지 않는다




 밭이 노랗고 과일이 동글동글해도 거리에 먹을 것이 없다. 네 마리의 새끼를 먹이기 위해서는 오늘 참새라도 잡아와야 한다. 참새를 잡을까 다람쥐를 잡을까. 엄마가 된 지 며칠 되지 않은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고민을 하며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산어귀에 다다르자, 복스럽게 살이 오른 달은 집 앞 감나무 중턱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마당에는 수북이 내려앉은 별빛을 장독대가 도로 반사 시키고, 감나무에 걸린 달빛 그림자는 명절을 앞둔 여인의 동선처럼 은은히 집을 비추었다. 달이 거의 차오르자, 시커먼 부엌에서도 달큰한 내음을 풍겨냈다. 읍내 오일장에서 여러 차례 담아 왔을 식재료들이 여인의 축축한 손에서 변신을 시도했다. 산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생선들이 소쿠리 위로 하나둘씩 쌓이고 있었다.


 바로 여기야!

 노란 고양이의 눈은 달빛으로 반짝였다.     

 평소엔 식탁 위에서 구경하기 힘든 비릿한 생선 냄새에, 일확천어의 앙큼한 꿈을 꾸는 들고양이가 마당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대보름 전날 한낮의 기름기가 산들바람에 타닥타닥 올라타듯, 사시사철 산채로 풀풀 거리던 아이 입술에도 오늘만큼은 달라붙었다. 마당 한 켠 곤로를 가져다 놓고 명절의 파티를 준비하던 여인의 손은 갓 익은 따끈한 동태전을 아이 입에 밀어주었다. 오물오물 입천장이 벗겨져도 좋을 맛을 반추하던 작은 입은 윤기가 흡족히 흘렀다. 그렇게라도 식솔의 입을 채우고 싶었던 여인의 입에는 끝내 풀내음이 가시지 않았다.


 마당으로 나온 곤로가 일할 때 시커먼 부엌의 아궁이 불도 뜨겁게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도왔다. 묵직한 솥뚜껑 틈으로 허연 김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종손가 며느리의 순한 입을 닮은 정갈한 음식이 아이들 대신해서 추석빔처럼 고운 자태를 얼기설기 대나무 채반에 마음의 탑으로 쌓았다.

 “어? 엄마, 고양이다!”

 “아이고야, 살찌이가 왔네. 저리 가래이.”

 여인은 손으로 노란 고양이를 휘휘 내저었다. 허탕 친 노란 고양이는 터벅터벅 뒤꼍으 숨었다.     


 아래채의 할머니 방문을 열면 쪼르르 콩나물에 물을 주던 쪽진 할머니와 콩 시루가 아이를 반겼다. 항아리를 덮어놓은 검은 천을 잡아 올리면 촘촘히 자라난 콩나물이 당당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의 지리함으로 자란 콩나물이 차례상에 보태기 위해 한 바가지 나올 즈음이면 해가 서산으로 떨어져 할머니의 은색 비녀를 붉혔다.

 크리스마스 때도 꼬마전구 하나 켜주지 않는 동네였지만, 해마다 명절 길목만큼은 달빛이 마당에 불을 켜주었다. 평소엔 풍기지 않는 기름진 음식 냄새와 흥성거릴 만남들에 아이는 마냥 설렜다.


 여명이 채 가시지 않는 어둠 속 시계는 일치감치 움직였고, 그 사이 하나둘 씩 마을의 모든 집의 불이 켜졌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아이의 아버지 형제도 쪽진 머리의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부지런히 돌아오고 있었다. 여인은 초새벽에 차례상 채비를 시작했는데 정오가 가까워서 할머니의 줄기들이 온전히 모였다. 각지에서 날아든 검은 두루마기와 양복이 섞인 행렬은 모두 굳은 표정으로, 그득한 차례상 아래 옹기종기 발을 모아 납작 조아렸다.

    

 성묘를 다녀온 후, 노년은 소주가 얹힌 작은 상 앞에서 각자 이야기로 깊어가고, 장년은 냇가에 그물 낚시를 드리우고, 청년은 앞산에 밤을 줍고 약초를 캐고, 소년들은 장대 들고 시골 동네를 휘저었다. 연못에서 주워온 골부리로 국을 끓여 먹고,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보글보글 집이 흥성거렸다. 아녀자들도 남자들이 있는 큰방을 피해 중간방에서 풀지 못한 작은 한들을 풀어놓는다.     



 ‘부엌이 빈 지금이야!’

 장독 뒤에서 한참 동안 생선을 노리던 그 노란 고양이가 다닥 달려 소쿠리에 가자미 한 마리를 낚아챘다. 사냥을 마친 고양이는 거처로 달려가며 4마리의 작은 새끼들과 커다란 달 아래서 배부른 끼니를 보낼 상상을 한다.     


 기역자의 한옥도, 콩나물을 키우시던 쪽진 머리의 할머니도, 경운기와 오토바이로 장을 봐주시던 웃음 많은 아저씨도, 부엌과 마당에서 불을 피우던 점잖은 아녀자도, 함께 뛰어놀던 동네의 어린이들도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간다.      

 기름진 작은 입을 보고 흐뭇함을 느끼는 인간 엄마와 고양이 엄마는, 먹을 걸 준비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배부른 아기들이 스스로 엄마가 되기 전까진, 힘들지 않다는 엄마 말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아기들은 배부름에 낮잠을 자고, 엄마고양이는 자는 아기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빈 마을에 결국 홀로 남을 자신을 빼닮은 성체의 실루엣을 장독에서 비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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