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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May 23. 2024

강 너머로 보내는 연서

8학년 2반 국민일기




 봄이 되면 나는 산소로 나들이를 갑니다. 남들은 으스스하다고 여길 이야기에, 나의 한평생의 이야기를 들어줄 하나의 작은 둔덕이 있기 때문이지요.

 실은 2년 전 여름에 둔덕을 만들면서, 더 이상 봄이란 계절이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온도가 점점 식어 결국에는 어느 식물도 살아갈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봄은 당신의 모습으로 여기저기 피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당신이 안녕하다는 뜻으로 생각하겠어요.



 여기는 아직도 바이러스가 돌아다녀요. 걸리면 감기처럼 아프다고 하네요. 이상한 일이에요.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눈에 선한 우리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게... 그리고 당신이 기억을 잃어가는 동안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었던 이유가 개미보다도 조그만 것 때문이었다는 게...


 이곳은 이제 마스크 없는 맨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진 희한한 세상이 되었지요. 어떨 때는 당신은 그런 서운한 세상을 못 봐서 다행인가 싶기도 해요. 봄과 함께 당신이 왔으니, 당신은 안녕한 거잖아요. 다만 꽃잎이 거리를 물들이면 한동안 지워지지 않듯이, 당신과 함께라 느꼈던 지난 봄들이 내게 아직 지워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평생 함께 살아온 우리집에는 여전히 당신의 공기로 가득하지요. 문지방이 닳고 내려앉도록 함께 드나들던 공간이었으니까요. 문 손잡이에 당신이 밀고 당기던 잔상을 매개로, 환하게 문 열고 들어오는 당신의 꿈을 자주 꿉니다. 그래도 여기서는 눈을 감으면 당신과 닿을 수 있으니, 저는 이 집이 좋습니다.


 오늘은 내가 말이 많았지요? 오늘따라 기어이 당신과 얘기라도 나누고 싶어 이 언덕에 왔습니다. 저만 온 건 아니고 시큰한 무릎을 도와주러 유모차랑 같이. 제 옆에 유모차가 있듯이 당신 주위로도 소복이 피어난 들꽃들이 외롭지 않게 있네요.

 봄볕 위로 꽃잎이 날리는 덕에 이 시간까지 떠들었네요. 언젠가는 당신 곁에서 그동안 당신 없이 홀로 남아 아이들과 잘 지내온 얘기 실컷 해줄 테니 부디 그날까지 그 자리에 잘 계시소...




 생전과 변함없이 내 말을 고요히 듣던 지아비 자리를 등지고, 유모차를 다시 집으로 밀어 봅니다. 유모차는 지아비가 키워준 부추를 한 다발 안고 있네요. 여기까지 무릎 아픈 날 부축해줘서 고맙다고 용돈이라도 쥐어주듯이...


 저녁에 지아비가 좋아하던 부추나 무쳐먹을까. 아니, 주말에 행여 다녀갈 반갑고도 어린 발걸음들이 먹는게 훨씬 좋을테니 신문지에 돌돌 말아 노오란 고무줄로 꽁꽁 묶어두어야지.


 소소한 생각이 봄날의 해처럼 산소를 노랗게 물들입니다. 산소에도 꽃이 피는 걸 보면 완연한 당신의 계절인가 봅니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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