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꽃잎이 내년을 기약하던 작년 늦봄에, 13년 동안 친구로 지내던 지인이 꽃잎과 함께 세상에서 분분히 흩어져 버렸다.
이 친구와는 만나면 그저 웃기 바쁠 정도로 죽이 잘 맞았기에 부엌의 숟가락 하나 새로 들이는 것까지 알 정도로 내내 같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원래도 비슷했던 취향이 더 비슷해지고, 서로의 자식을 지새끼 마냥 이뻐해 주는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봄에 잃은 친구는 내게 있어 다시없을 귀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고운 손으로 늘 고운 것만 전해주었는데, 그 손을 더는 잡을 수가 없다.
어디에나 네가 있는데, 어디에도 네가 없다니...
행여나 재회할까 함께 거닐던 길목들을 자꾸만 서성거려 본다. 그러나 너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 눈을 꼬옥 감아야 보고 싶던 네가 보인다. 햇빛 아래 눈을 감으면 검은색이 아니라 분홍빛이 나타난다. 너는 내게 분홍빛 같던 사람이었기에, 너와의 추억들이 빛바래 버렸더라도 선연한 분홍빛으로 감은 눈자위에 아른거린다.
너는 다음 생이 있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차마 거기까지 이를 수 없을 그곳에서 온 나뭇잎 소리가 서걱서걱 건조하게 나를 스친다. 그 메마른 공기 속에 내게 하고플 너의 말이 들릴 것만 같다.
'내 몫까지 너는 잘 살다가 와라...
더 이상 울지도 말고 지금이라도 쓰고픈 글도 맘껏 쓰면서 그저 잘 지내다가 천천히 만나자...'
다음 생이 만약에 있다면 바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 소리에다 차마 부치지 못할 안부를 힘겹게 실어 날려본다.
생과 사의 아득하지만 가까운 경계선 앞에서, 목구멍으로 기어올라오는 먹먹한 그리움도 언젠가는 처연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 믿어본다. 나무에 나부끼는 바람이 아스라이 사라질 때까지 흐느끼다, 이렇게라도 만났으니 잠시나마 반가웠다며 훠이훠이 배웅해주고 다시 일상으로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