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차를 타기 전 한 바퀴 둘러보며 상태를 확인한다. 타이어의 공기압은 적정한지 외관상 이상은 없는지? 그런데 조수석 문에 문콕 수준이 아닌 테러에 가까운 찌그러짐을 발견하게 되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최근 며칠간은 확인하지 않고 차를 탔는데 이건 대체 언제 생긴 걸까? 차로 출퇴근하다 보니 집인지 회사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집에서 그런 적은 없었으니 회사 주차관리소에 문의를 해보는 게 좋겠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대응이 되려나? 그렇지 않다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 받을 스트레스에 벌써 짜증이 밀려온다.
다행히 담당자는 확인을 해보겠다고 하는데 보험사를 통한 공문과 경찰의 입회하에 CCTV 조회가 가능하다는 답변이다. 개인정보보호 때문이라고 하는데 답답하다. 우선 보험사에 사고접수를 신고하고 다시 담당자와 통화하니 월요일이나 돼야 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주차한 장소가 어디었지? 수요일까지는 외관을 확인한 것 같기도 한데 그 후에는 어디에 세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족들과 외출하여 쇼핑과 외식을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과거 기억을 더듬고 있다. 빨리 집으로 가서 주차장 CCTV를 확인해 봐야겠다.
방재실에 찾아가서 CCTV 열람 신청서를 쓴다. 근무자는 친절하지 않다. 혼자 근무하는 주말에 외부인이 사무실에 와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런 걸 고려할 상황은 아니다. 갑자기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기분 좋게 차로 향하던 나는 뒷 범퍼의 커다랗고 까만 스크래치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떤 놈이 저렇게 해놓고 도망을 간 것인지 진짜 양심은 어디다가 팔아먹은 건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범인을 잡지 못했다. 가장 유력해 보이는 상황을 기초로 하여 경찰과 논의하였으나 경찰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CCTV를 확보해도 부딪힐 때 차가 움직이거나 흔들리는 모습이 확실히 보이거나, 가해차량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사고현장을 관찰하는 영상이 없다면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그럼 다른 차를 긁더라도 내리지 말고 그냥 도망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란 소리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거의 기억에 살짝 불안감이 올라왔지만 차분하게 찾아보기로 했다. 사고지점이 집인지 회사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집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야 범위를 좁힐 수 있을 테니까. 지난주는 내내 일정하게 출퇴근을 했으니 퇴근 시간부터 다음날 출근 시간까지의 CCTV를 확인해 봐야지. 나중에 또 찾아볼 일 있을 테니 기록을 해가며 찾아보자.
11.29 월 18:40 지하 3층 입차 후 중간 주차
11.30 화 6:27 출차
-> 아무 일 없음
11.30 화 21:23 지하 3층 안쪽 주차
12.1 수 6:30 차
-> 수상쩍은 트럭에서 커다란 짐을 싣고 내려서 차 옆으로 움직이는데 아슬아슬하게 별일은 없음. 항상 저 트럭 주위는 피해서 주차하는데 나중에 입차해서 저렇게 하면 별 소용이 없겠군. 흠~!
토요일에 발견했으니 그전까지는 전부 확인해야 하는데 방재실 직원은 언제까지 볼거냐며 본인 일을 해야 는데 사람들 많은 월요일 근무시간에 와서 확인하라고 불평을 해댄다. 일주일치만 확인하면 되니 기다려 달라! 여기 거주하는 주민인데 어떤 점이 우려되는 거냐? 사무실 내에 CCTV 달려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난 포기 못한다! 이번에는 범인을 꼭 잡아야 하기에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맘은 편하지 않다. 직원은 맞받아 친다. 확인을 하더라도 화면을 찍거나 자료를 가져갈 순 없다고.
12.1 수 21:45 지하 3층 중간 주차
12.2 목, 4:54
-> CCTV를 빠른 배속으로 돌려보다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욕을 하고 말았다.
"아~ 저 새끼, 나쁜 새끼, 양심도 없는 새끼~!"
새벽에 들어온 차는 앞 뒤로 차를 움직이다 아슬아슬하게 부딪히지 않았는데 그 이후 더 이동하다가 "쿵"하고 내 차를 받았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상태를 확인하고 곧이어 동승자도 내려서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잡았다. 이 새끼들. 저렇게 해놓고선 연락도 하지 않고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가버리는구나. 두고 보자~!"
회사 주차관리인에게 전화 걸어 굳이 CCTV 확인할 필요가 없고 알리니 그쪽 입장에선 부담이 덜어진 것인지 이것저것 해야 할 조치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우선 112에 신고했고 이후 경찰차가 도착했다. 결국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며 24시간 운영되니 원하는 시간에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 지체 없이 차를 몰아 마포경찰서로 가서 접수했다.
조사관: 네네, 내용 잘 들었고요, 요즘 이런 건이 많이 늘었는데 실제 접수된 건 중 20% 정도만 가해자를 찾는 수준입니다. 혹시 자료를 가지고 오셨나요?
나: 아니요, 경찰에서 직접 와서 자료를 가지고 가야 하며 촬영도 불가하다고 하더라고요.
조사관: 아, 진술서 상으로는 가해자는 사고가 난 것으로 인지한 것 같고 자료만 있으면 진행이 바로 가능할 듯한데…
나: 제가 사고시간을 확인할 용도로 촬영은 했는데 그걸 활용할 수 있나요?
조사관: 우선 한번 봐도 될까요? (확인 후에) 아 이건 뭐 확실하네요. 월요일에 보험사 쪽에 확인 후 진행사항 공유 드릴게요.
나: 감사합니다~!
속은 후련했지만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궁금해하던 일요일은 지나고 월요일 퇴근시간이 다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조사관이 알려준 업무용 휴대폰에 진행상황에 대해 조심스레 문자를 남겼다. 다음날 오전 8시 55분에 조사관의 전화가 왔는데 가해차량은 법인용 차량이고 당시 운전하던 사람이 오늘 경찰서로 오기로 되어있다고 했다. 정황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봐서 상세히 설명을 했다. 한두 차례 전화가 오긴 했지만 결국 그쪽에서 보험 처리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사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더니 "피해자 쪽에서 자료 다 준비해 주셨는데요 뭘, 잘 해결되시길 바랍니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크게 본 것 아니었지만 보험처리로 끝난다는 것에 괘씸함이 들어 조사관에게 전화 걸어 다시 물어보았다. 법이 개정되어 물피도주의 경우 벌점과 과태료가 부과된다는데 이번 건에도 해당이 되는지에 대해. 대답은 가해차량이 법인차이고 운전자가 CCTV에 찍혔지만 얼굴이 명확히 분간되지 않는 상황이며 이에 당시 운전자를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보험처리를 해주기로 해서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약간의 찜찜함은 남았지만 과거에 범인을 찾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리 예방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도 사고는 예상할 수 없이 발생한다. 길게 서술했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CCTV가 잘 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차 타기 전에 항상 차 상태를 확인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물피도주가 없는 세상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