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모두들 나를 쳐다본다. 기대감이 잔뜩 묻어 있다.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현재 시각, 날씨와 오전 업무의 분위기, 함께하는 사람수와 그들과의 관계, 누가 계산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와 예상되는 금액까지 고려한 많은 변수에 기반하여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최적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며 어려운 수학문제에 버금가는 복잡도이나 순식간에 풀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한, 특히나 맛집을 조금 안다고 자타공인하는 '맛집 잘 알러' 라면 자주 직면하게 되는 상황이다. 묘하게 인정받는 느낌과 작지 않은 부담감도 함께 자리 잡는다.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이 싫었을 뿐이고, 매일 다른 메뉴지만 신기하게도 똑같은 맛이 나는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 먹어야 함에 회의를 느껴 맛있는 음식을 찾아온 것뿐인데, 스스로가 아닌 타인이 공인한 사람이 돼버렸다.
트렌디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 광화문 일대의 맛집들. '긴자바이린'과 '안즈' 돈가스, '이태리재'와 '마르쉘' 파스타, '사발'의 퓨전 한식과 '황생가' 칼국수 등 내로라하는 셰프의 자부심이 가득 담긴 음식들 앞에서 함께한 이들은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오늘 평타는 했구나…' 안도감이 밀려온다.
반전은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음식은 없었다는 것이다. 경계를 더 넓혀 일류 호텔의 레스토랑에서도, 천혜의 식재료가 풍부한 전국 각지의 음식점에서도, 여행을 통해 만났던 새로운 음식 앞에서도 나는 덤덤했다.
그런데 이건 비단 미각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샌가 인생에 대한 감정 미각에서도 나에게는 같은 크기의 진폭만 존재했다. 상방경직성이 강해 어지간해서는 잘 오르지 않지만, 한번 떨어지면 끝을 알 수 없는 진폭을 지닌, 인생에 대한 비대칭적 감정미각(感情味覺).
사탕과 초콜릿처럼 새콤하고 달콤한 맛의 강렬함이 혀 끝의 모든 것인 유년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엔 먹지 않던, 아니 먹지 못했던 쓰고 매운 음식들이 입에 착착 달라붙었던 것은, 살아오며 느꼈던 씁쓸한 고통과 세상살이의 매콤한 얼얼함이 나도 모르게 혀에 각인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가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한 맛과 충만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 어린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던 '명동 돈가스'에 방문한다. 바로 튀겨낸 두툼한 돈가스를 새콤 달콤한 브라운소스에 찍어보지만 그때의 그 맛과 같지 않음에, 그리고 겨자와 함께 먹을 때가 더 맛있어진 것에 마음이 아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진폭의 크기와 형태가 변화되었음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한 셀 수 없는 경험만큼 더 깊어지고 넓어짐을 온전히 음미하여, 언젠가 지금의 나를 반추해 볼 때, 마주했던 모든 시간 충실했음에 후회하지 않고 싶다.
가속도가 붙는 시간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 몰라할 때가 있지만,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뿐임을 믿고, 시간의 공평함 앞에서 가까운 이들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고 싶다. 더 깊어진 관계 속에서, 같이 가는 만큼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