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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fom Oct 21. 2023

의도적인 길 잃기

#길잃음

  무엇을 해야 할지 결론은 정해져 있는데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똑같은 일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치지 않고 되물었다. 다른 답을 가져와 보라고. 그러나 누가 풀어도 같은 답이 나오는 문제를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지친 마음에 옆을 돌아보아도 주어진 문제만 다를 뿐 나와 같이 무의미한 일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했다. 그들 사이에서 점차 내 뒷목은 누군가가 잡아끌 듯이 점점 뻣뻣해져만 갔다. 한참 후에야 알았지만 그건 무기력증이었다.      


  메일함에 와 있는 낯선 제목을 클릭했다. '트레바리 신청받습니다'. 돈 내고 참여하는 독서클럽이라니. 호기심에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탈락'. 이유는 선발 시 MZ 세대가 우선이라는 것. 소위 낀세대는 세대 간 쿠션역할을 할 뿐 누군가의 배려 대상은 아니었다. 선심 쓰듯 베푸는 생색마저도 내 것이 아니었다. 다음 차수에 선발될 수 있도록 챙겨보겠다는 담당자의 배려 섞인 한마디를 뒤로하고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날 두 번째 세션에 지원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트레바리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다양한 모임이 가득했다. 검색 조건에 '안국' & '금요일'을 넣었더니 그리 많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강남보단 안국 모임의 수가 적구나. 흠~! '문구덕후'로 해보자. 그런데 '탈락'. 마지막 자리를 누가 차지한 듯하다. 그래서 한자리가 남아있던 에세이를 쓰는 모임 골랐다. 사실 회사 사람들만 아니라면 누구를 만나도 관계없었다. 단지 나와 달리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와 생각을 듣고 싶었다. 


  차선으로 고른 클럽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음식, 아름다움, 관계, 습관 등 평소에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주제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지루한 출퇴근 시간에 글감에 대한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며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달을 기다렸다. 오늘은 또 어떤 글들이 올라와 있을까? 내 생각과는 어떻게 다를까? 이런 표현을 생각해 내다니~! 대학생 때도 참여하지 않았던 번개모임도 나가며 클럽활동 때 말하지 못한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정말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구나.  


  내가 생각했던 삶의 목적지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온 것인지? 누군가 정해놓은 목적지가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본다. 나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한 궁금증에 기인한 의도적 길 잃기로 가능했던 것 같다. 끈질기게 괴롭혔던 목덜미의 뻐근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언젠가 다시 그 불청객이 찾아온다면 난 의도적인 길 잃기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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