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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fom Oct 22. 2023

아름다움과 사회의 관계

#아름다움

  작은 규모의 자회사에 파견 나가 회사의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해야 했던 때였다. 가장 어려운 업무 중에 하나는 인사(HR) 업무였다. 한창 성장하는 회사여서 직원 선발업무 비중이 높았는데 참여했던 면접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표이사의 새 비서를 뽑아야 했는데 이는 갑작스럽다기보다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는 2년간의 계약기간 종료 후 정직원으로 전환시키던지 해고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마지막 회식자리에서 그녀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왜 더 다닐 수 없는지 물었지만 모두가 유구무언이었다. 본인도 그리고 회사도 너무 잘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만이 공간을 채웠다.




  그간 대표는 비서의 전문성에 늘 불만이 많았는데 새로 올 비서는 업무에 대한 전문성뿐만 아니라 열정과 친화력 그리고 배우려고 하는 자세까지 갖춘 사람이기를 기대했다. 그런 사람이 선발된다면 2년이 후에는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본인이 원한다면 다른 업무로 전환하여 새로운 커리어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계약직을 전문적으로 알선해 주는 업체를 통해 여러 장의 이력서를 받았다. 업무이력을 기반으로 전문성에 대한 검토 후, 단정한 외모 기준을 더해 면접에 참가해 달라 연락을 하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중 최종 임원 면접까지 올라갔던 한 사람이 아직까지 떠오른다. 그녀는 거의 모든 질문에 똑 부러지게 답변을 했으며 S그룹에서 수년간 비서 업무를 했었다고 한다. S그룹 출신이었던 대표는 물었다.


  "S그룹에서 일했다면 OO임원을 알고 있나요?"


 "네 제가 직접 모신적은 없지만 아는 임원입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는데 그 대답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는 얼굴이 순간 떠오르다 사라졌다.  


  그녀가 합격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대표는 추가 후보자를 더 보고 싶다고 했고 처음엔 의아했으나 스친 생각은 '실력보다는 젊고 예쁜 비서를 원하는구나'였다. 30대 중반인 그녀의 노련함과 전문성보다는 젊음이, 그리고 예쁨이 경쟁력이었던 것이다. 직전 비서와 업무를 해오면서 그녀의 백치미에, 좋게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함에 분통을 터뜨렸던 대표가 원했던 것은 업무능력보다는 외모였다.  


  최종 선발된 비서는 단정하고 예쁜 스타일. 그러나 비서업무 경력이 전무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가르쳐야 했고 업무 센스마저 기대하기 어려웠다. 외모도 경쟁력이라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내 눈앞에 펼쳐지니 겉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서투른 업무가 이해가 될 만큼 외모는 경쟁력의 중요 요소 아니 모든 것인가?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속 문장 '아름다움도 천재성의 한 형태라네. 실은 천재성을 능가하는 것이지. 설명조차 필요 없으니 말이야'처럼 아름다움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지어 버리는 것인지?  


  '외모만이 한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 아니지 않냐'라는 이상적인 이야기가 실재하기는 어려운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즈음 우리 팀에서 단순 업무를 처리할 직원이 필요해 또 한 번 구인업무를 시작했다. 주된 업무는 법인카드 영수증 처리, 신문기사 스크랩 등 난이도가 높지 않은 정말 단순한 것이어서 어떤 사람이 오게 되더라도 어려움 없이 처리가능한 일이었다. 누굴 뽑아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후배사원 한 명이 추천해 줄 사람이 있다면서 사진 몇 장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젊은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온라인 의류사이트에서 모델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으며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취업준비생이라는 그녀는 누가 봐도 예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어진 그녀에 대한 소개 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예쁜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는 예쁜 사람일수록 세상에 대해 긍정적이기 때문이에요. 예쁜 사람은 어떤 일을 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려 하고 태어난 이후로 본인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적대적으로 대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죠. 반면에 못생긴 사람들의 특징은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자기를 보호하려는 특징이 있으며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어려워서 직원들과 어울리지 않고 겉돌게 돼요. 그래서 예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쁜 사람을 뽑는 것은 직원들에 대한 회사 차원의 복지입니다. 게다가 출근해서 일을 할 때 예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생산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대해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 솔직함에 놀랐고 딱히 뽑지 않을 이유도 없어 그녀를 최종 후보에 올렸다. 




  두 번의 에피소드를 통해 외적 아름다움이 아닌 개인이 지닌 각자의 고유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음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모양이나 색깔, 소리 따위가 마음에 들어 만족스럽고 좋은 느낌, 

  2.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함. 


  1번은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인지하며 개인의 노력으로 인한 변화의 가능성이 크지 않고 보편적인 기준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그 크기가 감소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유한함으로 인해 희소성을 가지는 강렬한 1번과 비교했을 때 2번의 아름다움에는 다양성이 있으며 변치 않는 영속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바꿀 수 없는 1번에 타협 혹은 내가 갖지 못함에 대한 반감이었는지 모르지만 살아오며 느꼈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은 2번에서 그 크기와 깊이가 상대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특히나 헨리경이 말한 '진정한 아름다움은 지적인 모습이 보이는 순간 사라지고 말아'라는 말은 내 경험치의 대척점에 있었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내는 지적인 모습에, 적절한 사례를 들어가며 하고자 하는 바를 조리 있고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박학다식함에, 듣는 이의 단점을 본인이 인지할 수 있도록 자연스레 유도하는 화법과 공감능력에 감탄하며 이런 특징은 아름다움과 지적인 면이 반비계 관계가 아닌 비례를 넘어 증폭관계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은 어떻게 발현되는지 이에 대한 조건 혹은 상황과 배경에 대해 늘 고민했다. 천편일률적인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즉흥적 집착에서 벗어나 다양한 아름다움과 이를 알아보는 눈은 어떻게 가지게 되는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인지할 때까지의 기다림과 여유가 기본이 되는 사회적 환경이 가능한지에 대해. 아름다움 다양성과 총량의 증가는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지구적 희망을 실현한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궁금함과 더불어 보다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강남과 강북, 금수저와 흙수저, 정규직과 계약직처럼 일차원적 요소로 사람을 구분하고 즉흥인 판단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록 사람마다의 고유함과 매력을 알아보고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 아니할 수 없도록 강요한다. 사전에도 엄연히 2번의 정의가 존재하지만 그런 정의가 있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볼수록 그 원인은 불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서 안된다는 강박과 만약 그 길에서 벗어나더라도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게 만드는 사회적 압박.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보고 있어서 행복하고 함께해서 풍요롭기 위한 것인데 그 다양함을 생각해 보고 찾아볼 생각을 할 수 없는 사회. 개인의 불행이 사회와 제도의 책임이라는 무책임한 지적이 아닌 우리가 정말 올바른 환경을 만들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정해진 길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걸어낸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우리를 둘러싼 시각과 생각들이 얼마나 편협했었는지 깨닫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에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 아름다움은 외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낯선 이방인의 질문에 귀를 기울여 대답해 주는 배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공감에서 비롯되며 이를 느꼈을 때의 충만함이다. 그곳에서의 머무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되며 다시 돌아보게 된 이곳에서의 삶의 방식에 당황하게 된다.  


  절벽을 마주 보고 서있는 느낌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런 사회가 바뀔 수는 있는 것인지, 살아가는 동안 나만이라도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다 한 세상 보내는 것으로 타협하고 말아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추하게 변해가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통해 작가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외적인 것일 수만은 없다는 진실을 말해 주듯이 즉흥적인 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불안과 조급함 대신 개인의 자존감과 그 존재를 알아봐 주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2년이라는 계약기간 후 정직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현재의 제도는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것이 아닌, 점점 다가오는 그 끝을 바라볼 때의 답답함과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을 주는 타인을 공감하지 않는 나쁜 제도가 아닌지 묻고 싶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더 크고 거대한 추함의 일면이 선의로 포장되어 있는 느낌이다. 눈앞에서 바로 해고할 수 있는 가혹한 고용문화를 가진 미국이지만, 드라마 <Suits>에서 아름다운 비서 '도나 폴슨'이 공감능력과 내적 아름다움으로 결국 본인이 일하던 로펌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 최고 운영책임자)로 올라서는 것을 보며, 그렇게 냉정해 보이는 사회가 역설적으로 개인의 내면을 더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해 열린사회라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역시도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일 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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