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모
뵙지 못한 지도 이모 목소리조차도 들어본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만날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래야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죄송합니다.
제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보답할 것들이
더 많았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항상 가득합니다.
이모가 업어 주시고 항상 귀여워, 예뻐해 주시는 조카도 어느덧 50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세월도 그리움도 많이 지나쳐 갔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요.
아버지가 계신 동안은 아버지의 아들로 항상 부담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불쌍한 어머니였고 못되고 못난 가정을 지키지 않는 나쁜 아버지 아들로도 살아야 했고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결혼과 함께 제 가정을 일고 살 때는 경제적으로
너무 험난해서 신혼의 단꿈과는 거리가 먼 그런 빠듯하고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고
하늘이 내려주신 소중한 저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는 하루 한 시도 마음 졸이지 않은 날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응급실을 가고 수술에 치료에...
한동안 나의 인생은 왜 이리 힘들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되는 듯하면 끊어지고 편한 듯하면 힘들어지는 나의 삶은 과연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럴까.
혼자서 끙끙 앓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이모 그때마다 저는 이모를 생각했습니다.
이모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생각했습니다.
남들 보기에 근사한 집에, 자동차에, 큰 사업장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서
남부러울 게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그 이모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모는 항상 슬펐으니까요.
큰언니의 삶도, 오빠들의 삶도, 동생, 아이들, 남편... 모두 짊어지고 가시기에 벅찬 삶이었겠지요.
감히 지금 나이 50이 되니 조금은 상상이 됩니다. 얼마나 힘든 삶이었을까요?
사랑하는 나의 이모 지금껏 지난 시간 동안 몇 번의 글을 쓰고 지웠는지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그냥 연락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모가 원하시는 것일까?
뭐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내가 괜히 연락드리고 힘들어하는 모습 보여 드리면
지켜보시느라 더 힘들어지시지 않을까.라고 혼자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래도 잘 살아온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버티고, 잘 이끌어온 삶이라 생각하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있으니까요.
비록 큰돈이 있는 것도 마음 편한 넉넉한 삶도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전쟁 같은 하루하루였습니다.
맛있는 음식 나누어 먹고 동생들 가족들과 가끔씩 얼굴 보며 도라도란
작은 행복 느껴가며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요.
이모가 조금씩 움직여 주셔서 정환이 정훈이와 그렇게 우애 있게 지낼 수 있는 기회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환이 한테는 가끔 전화해서 안부도 묻고 이모 근황도 자주 묻고 하는데
얼굴 보고 지낸 지는 참 오래되었네요. 근시일 내에 뵙고 싶습니다.
이모 사랑해요. 그리고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이란성 쌍둥이 아이(장애인)를 키우며 살아가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연재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If Only I Wer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