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의 차이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의 아들이 서울대를 가고 누구의 딸이 외국의 명문대를 가고.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자녀들이 좋은 성적이나 성과를 내서 그것이 기사화된 내용들을 많이 접하게 돼. 아들도 그런 내용들은 많이 접했을 거야.
솔직히 아빠는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너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도 그들은 아빠보다는 훨씬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을 테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었을 거야. 예전처럼 개천에서 용 나기는 무척 어려운 현실이니까.
각 집마다 정도의 차이라고는 하나 부모의 지원과 본인의 의지가 맞아떨어져야지만 이뤄 낼 수 있는 결과물또한 있을수 있겠지. 그런데 아빠가 너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조금 달라.
사실 가장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너에게 앞서 얘기한 가정들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지원을 해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야.
물론 아빠도 엄마도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
그래서 항상 미안하고 어떨 때는 반성을 하게 돼.
그런데 아들아.
아빠가 가장 너희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빠 또한 대기업 회장만큼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만큼 아니 그보다도 너희를 더 사랑하고 너희와 행복한데 아빠가 해줄 수 없는 몇몇 가지들로 인해서 너희에게 그 사랑을 다 전달해 주지 못하고 그들보다 나는 사랑을 덜 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항상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 나의 아들은 그 누군가의 아들보다 내가 더 사랑하고 아끼고 예뻐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하루의 마지막 또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에는 항상 하루를 반성하게 돼.
그리고 또 의지를 다지게 되고. 오늘을 열심히 산만큼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나의 가족들이 더 편안해지겠지. 나의 아들이 가족의 사랑으로 자라겠지.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게 돼.
사랑하는 아들 아빠에게 네가 제시해 준 이정표가 아니었다면 아빠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 작은 것에 행복하고 너의 미소에 하루의 피곤을 잊을 수 있었을까.
갈 길, 살아가야 할 그 길을 제시해 줘서 아빠는 그 길로만 가면 되는 거 같아.
아빠를 행복한 길로 안내해 줘서 고마워 나의 아들아.
사랑해.
이 글은 이란성 쌍둥이 아이(장애인)를 키우며 살아가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연재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If Only I Wer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