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나,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시간

<조용히 걷는 생각들> (22)

by 이호준

지은 지 50년이 넘은 집을 수리해서 들어가 보니 처음엔 좀처럼 편안함이 느껴지질 않았다. 낡은 자재를 걷어내고 새것을 채워 넣어도, 집은 바로 안락한 ‘마이 홈’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래된 집이란 세월의 흔적을 품은 채 살아 있는 구조물이라서, 정성을 들인 만큼만 공간을 내어줄 뿐 그 이상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때문에 이곳으로의 입주는 공사 완료를 축하하는 의식이 아니라, 낯선 집과 호흡을 맞춰가는 긴 적응의 시작임을 깨닫게 되었다.


입주 시기는 12월 초, 한겨울의 문턱이었다. 낮 동안 머물던 온기는 해가 지는 순간 빠르게 식어버렸고, 추위가 이토록 손쉽게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따뜻한 집을 당연시하며 살아왔던 터라, 온기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조건 위에서 만들어지는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첫 달 가스요금 고지서는 이 집에서 내가 마주해야 할 생활의 현실을 정직한 숫자로 보여주었다.


단열에 공을 들였음에도 집은 차가운 기운이 드나드는 틈을 기어이 남겼다. 결국 추위에 맞서 온도를 억지로 끌어올리기보다, 상황에 맞춰 온도를 고르는 감각을 익히는 편이 더 현명하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손님을 맞을 때와 혼자 머물 때,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필요한 온기의 결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기온이 더 떨어지며 창가에 맺힌 결로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 과정에서 환기와 난방 사이의 정교한 균형점을 찾아 나갔다. 가구 배치는 인테리어를 넘어 온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방책이 되었고, 창고에는 제설 도구와 소형 공구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날씨와 생활에 따라 매일 표정을 바꾸는 유기체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집은 곤란함 이상의 보상을 선사한다. 층간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깊은 고요가 찾아들고, 탁 트인 창밖 풍경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며 생각을 명료하게 만든다. 불필요한 생각과 말이 줄어든 자리, 하루의 리듬이 오롯이 정돈되는 이 평온함은 집이 내게 건네준 가장 큰 선물이다.


주택 생활이란 집을 내 입맛대로 길들이는 일이 아니라, 집의 성질에 나를 맞추며 생활의 균형을 찾고 지켜내는 과정인 것 같다. 지금 당장의 생활은 녹록지 않지만, 계절이 순환하면서 집도 나도 한결 수월하게 서로를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이 집을 한 번에 고쳐 ‘완성’하기보다, 살면서 조금씩 손을 보며 긴 호흡을 맞출 생각이다. 불편한 만큼 생활은 오히려 단순해지고, 그 단순함을 지키기 위해 내 손발은 더 부지런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부지런함이 결국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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