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자전거 타고 전국의 강을 누볐다. 한 번은 원주를 출발해 충주까지 남한강 라이딩을 계획했는데, 한 페친께서 이왕 가는 거 주변 폐사지를 둘러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원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였다. 황량한 벌판 넘어 펼쳐진 절터의 압도적 풍경에 사로잡혔다. 그건 마음의 동요였다. 상상의 나래였다. 휑한 들판, 폐허 속에 남겨진 사탑과 건물터가 나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였다.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 벌어졌던 것일까.
여주 고달사지는 작년에 갔던 폐사지 방문의 연장선이다. 이번엔 자전거가 아닌 걷기다. 역사 현장을 갈 때, 곧바로 목적지에 접근해서는 충분한 감흥을 느끼기 힘들다 생각했다. 주변의 지형과 지세를 밟고 둘러봐야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걷기는 훌륭한 역사공부 방법이다. 천천히 걸어 도달한 고달사지, 감정이 이입되는 듯했다.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건국되는 혁명의 순간, 임란에 부서지는 민초의 비극이 아련히 더듬어졌다.
여주종합터미널을 출발해 고달사지까지 17km, 3시간 40분을 걸었다. 호젓한 시골길을 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도 없는 지방국도를 따라가는 길이다. 자동차 소음과 매연에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그래도 한발 한발 폐사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매번 길게 걷는 길이 마냥 여유롭지만 않다. 신경 거슬리는 구간을 통과할 때도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목적지에 온전히 도달할 수 있다. 그만큼 목적지에 도착하면 안도와 희열은 커진다. 따뜻한 봄날에 마주한 폐사지. 이제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더듬는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202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