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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준 Jul 26. 2022

풍화(風化)의 아름다움

포토 에세이 (12) / SW중심사회 2022.07

디지털 세계는 시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본래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기술 발전에 따라 기능 저하가 발생할 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행한다. 새로운 버전은 이전 버전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급격히,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아날로그는 시간과 주변 환경 요인에 의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제 몸에 고스란히 기록한다. 돌이나 금속 같은 것들이 햇빛, 바람, 비와 눈 등의 작용에 의해 서서히 부서지고 부식되는 풍화 현상이 좋은 예다. 소멸을 향해 가는 물리적 현상이지만, 그 과정에서 독특한 모양과 색채를 드러내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스·로마 시대 건축물들이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할 뿐만 아니라 장구한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건축물에도 생로병사의 과정이 있는 듯 말이다.


현재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아날로그 세상을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다. 물질의 세계와 정보의 세계가 복잡하게 공존할 뿐이다. 향후 인류 사회의 발전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 여부에 달려 있다. 디지털은 새로움과 세련됨으로, 아날로그는 기억의 보존과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 촬영장소: 로마 콜로세움 / 충남 서천 화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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