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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준 Oct 20. 2022

방랑 사진가

포토 에세이 (15) / <SW중심사회> 2022.10

거리 사진가(street photographer)의 가슴에는 방랑이라는 DNA가 각인되어 있다. 딱히 정한 곳 없어도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방랑과 비슷한 말로 방황이 있는데, 둘은 의미가 좀 다르다. 방랑은 정한 곳은 없지만 일정한 목표를 갖고 배회하는 것이다. 방랑 시인, 방랑 가수, 방랑 기자 같은 말이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방황은 목표 없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갈팡질팡하며 헤매는 것을 말한다. 좋은 피사체를 찾아내고 멋진 구도를 고민해야 하는 사진가에게 방황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주말에 방랑 사진가가 된다. 멀리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집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중 자주 가는 곳이 서촌이다. 서촌은 경복궁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인왕산 아래 자리한 나지막한 마을이다. 한옥, 적산가옥, 오래된 골목길 등이 남아 있는 정겨운 동네다. 서쪽에 병풍처럼 버티고 있는 인왕산 때문에 해가 일찍 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른 오후에 벌써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그런 서촌에 최근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오래된 계단을 오르내리며 서촌 사람들의 생활 미학과 삶의 흔적을 기억장치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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