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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다 Sep 21. 2021

종이 비행기

N가지의 스토리텔링





상쾌하고 맑은 황금빛 이른 아침부터, 유독 가을이 빨리 오는 곳으로 산행을 왔다.이른 가을 늦은 여름, 지우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매년 8월 말이 되면 함께 산행을 가곤 한다. 횟수로 벌써 4년째가 되었다. 항상 가던 코스를 따라 꼬불꼬불 구부러진 비타 길을 올라갈 때면 말이 많은 지우도 나도 아무 말이 없어진다. 빨리 가려고도 하지 않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30여 분의 시간 동안 걸어 올라가며 주변 가득 메운 풀숲으로 시선을 이러 저리 여유롭게 옮기다가도, 지우와 나의 시선을 유독 오래도록 잡아채는 나무 한그루 앞에 멈춰 선다.



시선이 멈춘 곳에 걸음도 당연히 멈춘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는 허리춤쯤에서 90도 꺾인 상태로, 성인 키 크기의 2배와 두세 명은 합친 것 같은 두께를 가지고 있다. 잡풀이 무성한 땅 위로 4년째 요지부동이다. 유독 눈에 띄는 나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은 익숙한 풍경 속에 낯선 것 하나가 걸려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른 손바닥만 한 하얀 종이 하나가 있었다. 심하게 구겨져 있지만 양쪽으로 길게 뻗은 모양새가 비행기와 닮았다.



호기심 많고 발이 빠른 지우가 손을 뻗어 걸려있는 하얀 종이를 빼내어 본다.




"누가 이런 산속에 종이비행기를 날린 거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손에 든 종이비행기를 이리저리 살피던 지우는 구겨진 날개 사이로 '억해'라는 글자를 발견한다. 잘린듯한 글자가 못내 궁금해진 지우는 나와 눈을 한 번 맞추었다가 시선을 돌려 접혀진 부분을 조심스레 펴 보는데, 상단의 양 귀퉁이가 잘린 것 외에는 접힌 선 모양을 되펴낸 A4용지 본래 모양 위로 희미해진 글자가 여러 줄 쓰여 있었다.




"수현아! 여기 뭐라고 적혀 있는데? 이리 가까이 와바."




지우는 눈으로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듯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이상하게도 울컥거리는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안녕, 나는 준석이라고 해. 이 비행기를 발견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 와, 너무 기쁘다.


저기...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읽어 줄 거지? 이런 산속에 나무가 우거진 곳에 내 바람이 머물러 있다니 기분이 묘해. 이를 발견하고 읽고 있는 너희들도 기분이 묘하지? 누군가에게 내 바람이 닿을 때까지 버텨준 비행기에게 너무 고마워.


있잖아. 나는 황준석이야. 곱슬 끼가 있는 옅은 갈색 머리에 짙은 쌍꺼풀이 있는 큰 눈, 코 위로 작은 검은 점이 있고 키는 178cm에 발라드를 좋아하지.


운동은 좋아하는 편인데, 농구는 무척 싫어해. 당근은 좋은데 오이는 싫어하고. 아! 그리고 우유보다는 캔커피를 즐겨 마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연 보호에 진심인 남자 아이지. 흠, 아이라고 하니 이상하네? 청소년이라고 할까?


그래, 난 청소년이지. 그림을 못 그리지만 쫄라맨을 그리는 걸 즐겨 하고, 핑크색을 좋아하고 로맨스 소설을 즐겨 있는 19살의 고등학생이야.


어때? 너무 멋진 녀석이지 않아?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울 수가 없어. 그래서 늘 내 방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는 예쁜 식물들이 가득해. 그래서일까. 나는 이곳을 오는 곳을 좋아해. 아마도 정원을 즐겨 가꾸시는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나는 초록이고 싱그럽고 향기로운 것들을 좋아해.


그리고 특별히 낮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 밤하늘에는 내가 되고 싶은 별들이 늘 반짝이고 있거든. 은근히 아름다운 달마저도 밤이면 자주 볼 수 있으니깐 밤이 참 좋더라...


내가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 말이야. 누군가가 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야.


누군가가 마음 아파하더라도 날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너무 이기적인 아이처럼 보이려나?


그런데 나는 늘 착한 아이였는걸. 나는 그녀와 그가 말하고 소원하는 것을 늘 경청하고 따랐지만, 그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어.


간혹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도 잊곤 했었지. 끝없이 요구하기만 하고 나를 없는 사람처럼 보잖아... 그래서 이렇게라도 해서 그들 기억에 남고 싶었어. 아주 오래도록, 이왕이면 영원히.


언젠가 사라지더라도 내가 누구였는지 혹은 이름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해 주길 바라서 말이야. 그런데 불안해.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그녀가 혹은 그가 잊어버리면 어떡해?


그래서 말이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희가 날 기억해 주면 안 될까? 내 마지막 간절한 소원이야. 내가 이 비행기를 날리며 빌었던 바람이야.


무례한 부탁인 거 아는데... 그런데, 내 이름을, 나를 기억해 주지 않을래...?'




종이비행기 속 글자들을 이미 모두 읽어 내려간 지우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나 또한 준석이의 바람을 마주하고 펼쳐진 종이 위로 얼굴을 파묻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준석이라는 이름을 발견하자마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었고, 필사적으로 마음 한 켠이 아려오는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던 탓에 온몸은 부들 떨리고 어깨는 들썩여 편지라도 부둥켜 앉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도하다'입니다.


'종이비행기'그림 한 컷을 보고 즉흥적으로 짧은 스토리텔링을 해보았는데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감춰진 듯,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글을 써 보았습니다.

왜? 이런 글을 써 내려가게 되었는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만, 그저 머릿속에 펼쳐지는 대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곳에 앞으로 한 장의 그림을 임의로 두고, 15분 상상 프리라이팅을 도구삼아

짧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쌓아갈 예정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제 상상력이 어느 정도가 될지 혹은 어떤 글들을 쓰고 싶을지를, 계속 무엇이든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쌓이는 기록들을 통해서 발견해 나갈 예정입니다.




매거진에 올리는 글들은 퇴고를 거치지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겨, 제한된 시간 안에 쓴 이야기들로 지속적으로 올리고자 합니다.




*별것 아닌 글이지만, 소중한 제 별☆(창작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는 주고 싶었던 같습니다.


                                                                     "나를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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