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내는 중입니다

15년 만에 쓰는 애도 일기

by 글로나

엄마가 떠났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보내지 않았다.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아침마다 내 옆에 누워 "우리 공주님, 일어나세요."라고 말하며 내 하루를 위해 기도해 주던 엄마를 어떻게 보내란 말인가.


아침을 먹지 않으면 절대 이 문을 통과할 수 없다면서 기어코 현관문까지 숟가락을 들고 쫓아 나오던 엄마를,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저만치 떨어져 가는 무뚝뚝한 딸내미에게 팔짱 끼는 울 엄마를 어떻게 저 먼 곳으로 보내란 것인가. 나는 엄마를 놓지 못한 채 탯줄로 단단하게 연결된 아기처럼 억지로 부여잡았다. 그것이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끈이란 걸 알면서도 15년째 그러고 있다.




애도(哀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2010년 1월 5일. 그 해 가장 큰 눈이 내린 날. 새벽 5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다.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 있으니 떠나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란다.


말도 안 돼. 엄마, 어제까지만 해도 힘겹지만 나랑 눈도 마주쳤잖아. 내내 엄마 옆에 있다가 딱 하루 집에 갔는데 하필 왜 오늘. 왜 지금.

울부짖었다. 이게 마지막일 리 없다고. 아직 떠날 시간이 아니라고. 엄마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하지만 시간은 날 위해 멈춰주지 않았다. 당시 초보운전자이던 남자친구가 폭설을 뚫고 가는 동안 나는 전화로 엄마를 목놓아 불렀다. 조금만 기다려 주지. 폭설을 뚫고 내가 달려가고 있는데. 딱 한 시간만 더 머물다 가지. 하필 그 겨울 처음 내린 대폭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겨우 도착한 호스피스병원 임종실에서 마주한 엄마는 주렁주렁 링거와 주사 바늘에서 해방된 채 평온한 표정으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나 왔어, 엄마. 내가 좀 늦었지. 미안해.


엄마는 금방이라도 잠에서 깰 것처럼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왔다고, 하나뿐인 딸내미가 왔다고 불렀지만 엄마는 그저 따뜻한 손으로만 나를 맞아줄 뿐이었다. 내 눈엔 그저 잠자는 여왕인데, 그런 엄마를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단다. 간병을 하면서 오늘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 몰랐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장례식장에서의 시간은 누군가 악마의 편집을 해놓은 것처럼 뒤섞여 있다. 어느 부분은 통편집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고, 함께 울어주었다는 것.


나를 위로해 주던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 덕분에 견딘 걸까. 아니면 애써 밝은 척을 했던 걸까. 그걸로 내 속에 있는 슬픔을 어느 정도 걷어냈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씩씩했다.


사흘간의 장례와 삼우제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결혼이라는 인당수(!)에 뛰어들어야 했다. 엄마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결혼이라니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하나뿐인 딸 결혼식은 보고 가야지.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야 한 달 정도 남았다는 벼락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긴 즈음, 난 그다음 해 예정했던 결혼을 앞당겼다.


사랑은 기적을 만든다. 1개월 선고를 받은 엄마가 3개월을 더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딸내미 결혼을 보고 가야겠다는 의지는 아니었을까, 감히 속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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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꾹 참은 눈물을 이제야 흘리며 쓰는 애도 일기.


엄마를 보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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