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오면서 전세계 곳곳에 한류 열풍이 불었죠. 하지만 스리랑카는 예외였는데요. 스리랑카 한국대사관은 고민했죠. ‘어떻게 하면 이곳에도 한류를 일으킬 수 있을까?’ 2012년, 이들은 현지 방송국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곤 여러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한국드라마 ‘대장금’을 방송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안 된다’였습니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말이죠. 아무리 설득해봤자 당장 돈이 없다니 얘기가 진행이 안됐는데요. 이 문제,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협상을 풀어가는 첫걸음, 바로 양측의 욕구를 파악하는 거죠. 한국대사관의 욕구는 ‘한류 열풍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스리랑카 방송국은 ‘예산이 부족’하고요.
양쪽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민하던 한국대사관은 기막힌 대안을 내 놨습니다. 우선 대사관이 대장금 방영권을 구입해서 방송국에 주겠다는 거죠. 대신 방영 후 수익이 나면 그때 수익의 40%를 대사관에 달라고 했습니다. 돈 안들이고 좋은 드라마를 방영할 수 있게 되니 스리랑카 방송국은 대환영이었죠. 결국 대장금은 99%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스리랑카 국민드라마로 등극했습니다.(2012.11~2013. 3) 대사관의 바람대로 스리랑카에는 거센 한류 열풍이 일었고요. 만약 대사관이 ‘방송해달라’고만 주장하고, 상대는 ‘돈 없어 안 된다’고만 고집했다면 이 협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을 겁니다.
실제로 협상을 하다 보면 상대가 이렇게 한가지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요구’ 말이죠. 왜냐고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 요구 하나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목 마르다’는 욕구를 콜라, 사이다, 주스 등으로 다 채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상대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쪽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죠. 따라서 서로가 이를 깨닫고 양쪽의 욕구에 집중하면 모두가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데요. 이를 ‘Creative option’, 즉 창조적 대안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창조적 대안으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볼까요? 1991년, 사할린에 있는 가스 유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국제 입찰에 부쳐졌습니다. 공사비만 120억 달러가 드는 거대 프로젝트였죠. 여기에 미국의 석유업체 아모코(Amoco), 호주의 BHP, 한국의 H그룹, 세 회사가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하기로 했는데요. 이들은 우선 컨소시엄을 꾸리기 위한 협상에 나섰죠. 이때 컨소시엄의 의사결정 방법을 두고 H그룹과 아모코가 부딪쳤습니다. H그룹은 반드시 ‘만장일치’로 해야 한다고 하고, 아모코는 ‘과반수’로 하자고 했죠. 양쪽 모두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는데요.
이때 H그룹 변호사는 양쪽의 욕구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H그룹은 나머지 두 서양 회사들이(미국, 호주) 똘똘 뭉쳐 자신을 따돌릴까 걱정되었습니다. 즉, H그룹은 ‘파트너들로부터 소외되기 싫어’ 만장일치를 주장했던 건데요. 그럼 자신을 무시 못할 테니까요. 반면 아모코는 ‘H그룹을 못 믿어’ 과반수 의사결정을 원했습니다 H그룹이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계속 결정을 반대하며 떼를 쓰면 일이 진행이 안 될 테니까요.
상황을 파악한 H그룹 변호사가 생각해낸 창조적 대안은 바로 영미법의 ‘Best Effort’. 이는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조항인데요. 영미법이 기준인 계약에서는 이걸 약속하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법원에서 서로가 정말 최선의 노력을 했는지를 따지기 때문이죠. 만약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계약 위반이 되어 버리고요. 변호사는 이 조항을 활용해 ‘당사자들은 모두 만장일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Best Effort)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과반수로 결정한다’는 타협안을 내놨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모코와 BHP는 만장일치를 위해 H그룹을 설득하며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겠죠.
(H그룹 욕구해결) H그룹도 괜히 고집부리다 과반수로 의사결정이 될 수도 있으니 협조적일 테고요.
(아모코 욕구해결) 결국 세 기업은 이 타협안에 동의하고 컨소시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Best Effort 가 창조적 대안이 된 것이죠.
혹시 당신도 꽉 막힌 협상에 출구가 안보여 한숨만 쉬고 계신가요? 한국대사관과 H그룹 변호사처럼 겉으로 드러난 요구가 아니라 양측의 진짜 속마음, 즉 욕구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세요.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창조적 대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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