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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9. 2018

아일랜드 연가 16 - 아이리쉬 vs 잉글리쉬

아이리쉬 vs 잉글리쉬

제목 : 아일랜드 연가 16 – 아이리쉬 vs 잉글리쉬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걷고, 뛰고를 반복하며 땀을 내고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 입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늘 비슷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낯선 이가 나타나면 서로 말은 안해도 어디서 왔을까, 왜 왔을까, 뭐 하는 사람일까…. 궁금증이 폭발하지만 누구 하나 선듯 나서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저 낯선이에게도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일상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이리쉬의 소박한 배려이다. 그것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이며 동시에 이방인이 봄 바람에 눈 녹듯 자연스레 이 동네에 스며가는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오늘도 탈의실에서 만난 레이첼이 인사를 건넸다. 레이첼은 고유의 잉글랜드 액센트를 가지고 있어서 난 그녀가 친절하게 질문을 하고 인사를 건네도 지난 몇 주동안 건성으로 대답해 왔었다. 대화라는 것이 한 마디 툭 던지는 인사에도 반응을 해 가면서 상대의 눈빛에 공감을 해야 줄줄 이어지는 법인데, 레이첼이 ‘헬로우, 하우아유’ 하며 말을 걸어도 ‘파인, 땡스’하며 쌀쌀맞게 답하고 바쁜척 가방을 챙겨 나오기 바빴다.  혹독한 지배로 새겨진 아픈 기억은 대물림을 하기에 단 하루도 식민지를 경험하지 못한 나까지도 일본에 대해서라면 사사건건 모든면에서 적대감을 품게 되고, 지배자의 자손들이 뭐 하나 잘 하는 것이 있더라도 어떤 핑계거리를 찾아 우연히 그럴것이라,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그리되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그들을 폄하 하곤 했다. 

그런 감정은 아일랜드로 함께 이주해 왔고, 이들이 겪은 잉글랜드 치하의 식민생활에 대한 분노와 억울한 기록들을 접하며 나는 마치 잔다르크라도 된 듯이 영국인을 만나면 아이리쉬를 칭찬하고 축혀 세웠으며, 혹여라도 이들을 비하하는 사소한 농담을 들으면 아이리쉬를 옹호하고 감쌌을 뿐 아니라 그런 농담을 하는 사람들을 마치 세계적 정서를 이해 못하고 역사적으로 뒤처진 것 처럼 은근슬쩍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재된 영국에 대한 선입견때문인지 자칭 자신들을 ‘세계적 신사’라고 일컫는 영국인이 베푸는 친절은 모두 위선이며 조작된 것이라고 인식했다. 특히 영어에 서툰 외국인들에게 깍듯한 매너를 보이며 길 하나 묻는 행인에게 조차 단정한 손짓과 미소로 지나치게 상세히 알려주는 그들의 태도를 마치 열등인자를 우성인자가 돌봐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친절을 가장한 오만함이며 지배자의 자손이 갖는 피지배자에 대한 동정이라고 단정해 왔었다.  그러니 나를 바라보는 레이첼의 눈빛도 친절한 미소도 순수하게 받아 들일리가 없었다.

같은 상황에서 잉글리쉬가 아닌 아이리쉬라면 나는 그것을 따듯함에서 우러나는 호의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동정이 아니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심어린 우정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쉬이 마음을 열었다.

우리 동네는 동양인이 거의 살지 않는데다 구석진 곳에 위치한 호텔 헬스클럽에는 도심이라 할지라도 한적한 농촌 생활이나 별 다름 없이 조용히 지내는 노인들이 대다수이다. 이런 곳에 끼어 있는 까만 눈의 나도, 잉글랜드 액센트 심한 레이첼도 눈에 띌수 밖에 없는 이방인이다. 레이첼은 탈의실에서 스쳐 만나는 사람들 중에 틀림없이 ‘나’만은 자신 처럼 이곳으로 이주해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거라 확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령대도 나와 비슷할거라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같이 온 딸 나이를 말하며 간접적으로 자신의 연령을 밝히면서까지 대화에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 레이첼에게 맹맹히 대하는 나를 보며 한 공간에 있던 메리는 다소 무안했던지 나의 대변인이라도 된듯 묻지도 않았는데 대화에 끼어들어 날씨가 좋아서 다른 날보다 운동하기에도 더 좋았다고 늘어 놓았다. 그런 너그러운 마음에 순간 나도 덩달아 마치 오랜 앙금을 씻어 내기라도 한듯 탈의실에서 옷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상태로 수다를 떨게 되었다.

헬스클럽에서 어떤 운동기구를 주로 사용하는지 묻고 답하게 되었으며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화제는 차차 어떤 음식이 칼로리가 높다는둥, 살이찐다는 둥....그런 다이어트 이야기로 확장되어 갔다. 급기야는 정수기 물을 한 컵씩 들고 한쪽 벽면에 붙은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주부들의 주특기인 ‘나만의 레서피’를 자랑해 가며 열변을 토했다. 메리는 버터와 치즈를 며칠만 먹어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바로 올라 간다며, 병원에서 측정한 기록까지 들먹이며 증거자료라도 확보했다는 듯 모두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조차 진지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말했고, 레이첼은 아이리쉬 버터와 치즈를 먹지 않는 것은 사람이 물을 안마시고 버티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며 영국산 음식들보다 훨씬 고급이라고 칭찬을 했다.

그런 레이첼의 말이 마치 버터와 치즈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 할 것 이라는 뉘앙스를 주었는지, 메리는 7개월전에 남편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 너무 큰 슬픔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음식을 쓰레기처럼 먹어댔더니 자신의 건강마져 건강이 나빠졌다며, 버터와 치즈가 아무리 맛있어도 조심하라고 최근에 헬스클럽에 꾸준히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운동에서 음식으로, 건강으로 진화되었던 대화는 결국에 죽음으로 옮겨가고 메리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치 우리는 오랜시간 친구였던 것 처럼 함께 위로해 주었다. 마침 나는 ‘죽음’을 소재로 소설을 쓰던 참이었기에 거의 몇주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선명하지 않은 이 명제 앞에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결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경험 할 수 없는 유일한 일 ‘죽음’은 두려움이고 아픔이며 막연함이면서도 반드시 맞게되는 삶의 마지막 체험임에도, 그것에 대한 느낌이나 감정, 아픔에 대하여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것 앞에서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젊은이나 노인도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레이첼은 영국에서 줄곧 살다가 아일랜드에 온지 5년 되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사람들보다 훨씬 따듯하고 친절하다며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노년까지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도 아일랜드 생활을 만족해 한다고 덧붙이며. 그리고 나에게 아일랜드에 얼마나 살았냐고, 고향이 그립지 않냐고 묻는다. 무엇이 나를 아일랜드에 남게 했느냐고. 20여년을 살고 있다고 하니 메리는 자기보다 아일랜드를 써니가 더 많이 알겠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고 이렇게 자신의 나라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살아가는 레이첼과 나를 통해서 메리는 영국보다, 한국보다 작지만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특히 아일랜드 날씨가 너무나 맘에 든다는 내 말에 두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아일랜드 최악의 자원이 날씨인데 그마저 좋아한다니 다른 것들은 얼마나 더 좋겠냐며 까르륵 웃음을 지었다. 


아이리쉬 아주머니 메리의 참견으로 시작된 대화로 오랜 시간 묵어 있던 잉글리쉬에 대한 편견은 봄바람에 밀려나는 찬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어쩌면 어느만큼 시간이 지나가면 봄 볕에 꽃을 피우고 작은 뿌리를 단단히 내린 후 홀씨되어 세상에 퍼져가는 노란  민들레마냥 잉글리쉬에 대한 새로운 감정은 주변 친구들에게 조금은 더 긍정적인 언어로 뿌려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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