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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03. 2021

책리뷰-영원한 청년 권순영 판사이야기

The Family of Man 인간가족 / 신촌책방  : 권용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2020년은 찾아 오는 사람도, 만나러 갈 사람도 없는 한해가 되었다. 그저 간혹 우편물 배달하는 우체부 덕분에 초인종이 고장나지 않고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12월에는 해마다 우편물이 넘쳐서 평소 하루 이틀이면 배달 될 우편물도 이삼주씩 걸리곤 한다. 내가 한국으로 보낸 성탄절카드는 3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수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올해는 성탄절 카드조차 날짜에 맞춰서 받아 보지 못할게 뻔했다. 그런데 성탄이브에 나에게 배달된 우편물, 그것은 한국에서 보내온 책 꾸러미였다. 몇 해전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선생님 내외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다. 소포는 묵직했다.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책을 한 권 보내주신다고 했었는데 네권이나 왔다. 싼타클로스가 따로 없는 날이 되었다. 당장 열어 읽고 싶었는데, 제목을 읽고는 왠지 아껴두고 싶어 졌다. 권용은 선생님의 부친 [권순영 판사]의 이야기, 이것은 영웅담일까, 평전일까, 위인전일까? 불과 2년전에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에 대해 책을 쓴다면 무용담 쓰듯이 흘러가지 않을까? 내가 아는 아빠와 아빠 자신이 기억하는 삶은 비슷하기나 한 걸까? 나는 조금 생각을 미뤄 두기로 했다. 성탄절날 아빠생각에 눈물범벅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성탄연휴가 지나고, 새해 첫날을 지냈다. 나는 1월1일을 명절로 지낸다. 아일랜드에 온 이후부터다. 이날 새벽 일찍 시아버님의 차례를 모신 후 근교로 해돋이 사진을 찍으러 간다. 아침 일찍 따듯한 커피를 담은 보온 물통을 들고 언덕에 올라 어둠에서 밝음으로 가는 시간을 맞으며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낼까 구상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남편도 그렇고 그럴 마음이 안되었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명절을 대신하기로 했다. 꼬리찜을 만들고 손만두를 200개 빚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와 함께 지냈던 명절을 생각하고, 갓 쪄낸 큰 만두를 한 입에 넣고는 호호거리며 고통인지 즐거움인지 모를 인상찌푸리는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아직 아빠의 제사도 차례도 지내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이 하고 싶을때 시작하고 싶다. 무엇이 정리되지 않은걸까?


1월 2일, 검은 책장을 넘겼다. 선생님께서 40여년이 지난 시간이 되서야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이유를 설명하며 시작되는 이야기. 직접 책을 만들고 출판까지 진행한 이유가 충분히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 말에 나는 이미 이 책을 다 읽은 것 처럼 가슴이 흔들렸다. 그리고 쓰레기하나 없는 마당을 싸리비로 쓱쓱 쓸어내는 것 같은 담담한 글이 한장 한장 넘어갔다. 간간히 나오는 사진도 과하지 않은 것들로 절제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분의 아버님 이야기라 그런지도 모르고, 글을 좋아하고 예술을 가까이하는 법조인이라는 점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식사를 거르고 방안이 어둠 가득해지는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책은 280여 페이지인데 후반부는 가족사진으로 되어 있어서 실제 읽어야 할 분량은 170페이지를 조금 넘는다. 글이 끝나고 사진을 넘기면서도 나는 글이 좀더 나와 주기를 기다리며 페이지를 넘겨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서 에필로그와 판사님의 간단한 이력으로 책은 끝이 났다. 


아주 단정하게 차려진 한정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먹은 후 속에서 밀려오는 음식냄새가 전혀 없는 소화 잘 되는 음식이 내 안에 들어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추모한다는 것에 감정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쓰지 않더라도, 언젠가 나도 아빠의 추억을 편안하게 꺼내 보고 싶다. 가끔씩 꿈에 나타나 나를 깨우곤 하는 아빠가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지 물어 보고 싶다. 켜켜이 쌓인 애증의 감정을 펼쳐 비질을 하고 깨끗한 헝겁으로 닦아 잘 정리하고 싶다. 그렇게 그리움을 추모하고 싶은 날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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