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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2. 2018

아일랜드 4일간의 만남 -마지막편

아일랜드 연가 7

제목 : 아일랜드 연가 7 : 아일랜드 4일간의 만남 – 마지막 편 -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마찬가지고 미국에서 오신분들도 유럽 시차와 맞지 않는 탓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거나 초저녁부터 졸리기 시작하는데 그 시차를 극복하고 정해진 일정을 진행하는 것은 여행이라기 보다 고행에 가깝다. 배고프지 않아도 식사시간이 찾아오고 한참 졸린 시간에 이동하거나 구경을 해야하니. 차라리 이런 상황이면 여기저기 많은 곳을 구경하는 것 보다는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졸다 자다 창밖으로 마을과 마을, 지방과 지방을 지나며 궁금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오늘은 아일랜드 지도 가장 오른쪽 끝에서 남서쪽 끝까지 가는 일정이니 차에서 6-7시간은 족히 있어야 한다. 우선 두 시간 가서 오바마 대통령 조상이 살았다는 마을휴게소에서 휴식도 하고 전시관도 둘러 본 후 다시 두시간 가량 더 가서 아일랜드 서해안 최대 절경인 ‘클립스 어브 모허’에 도착을 했다. 일기예보는 하루종일 비! 하지만 다행스레 오전 내내 비는 오지 않아서 도시를 빠져나와 펼쳐진 녹색 지평선으로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을 실컷 감상 할 수 있었다.


‘터치 더 우드’를 하지 않아서 일까.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옛말처럼 아일랜드 사람들도  자기가 한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될까봐서 불길한 예감이 들때면 말하면서 동시에 주변에 나무 재질의 뭐라도 찾아서 톡톡 두들리는 관습이 있다. 그렇게 하면 했던 말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튼 나무를 두들기지 않아서인지 모허절벽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서편 대서양 바다에서 해군이 전진하듯 파도보다 빠르게 먹구름이 밀려 오고 있었다. 곧 비가 쏟아질게 틀림 없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아요. 사실 년중 300일 가까이 하루에 한번쯤은 비가 오는 아일랜드에서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간다면 그것도 제대로 아일랜드를 봤다고 할 수 없을거에요! 그런면에서 이번 여행은 제대로 아일랜드를 맛 본다고 할수 있겠어요. 우의랑 우산도 잘 챙겨 내리시고 자유롭게 절벽과 바다를 감상하시고 1시에 박물관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지요! 다행히 수평선이 아직은 보이네요. 그러니 까치발 들고 대서양 수평선쪽을 보시면 여러분들 사시는 미국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호호”


비오는 날을 합리화 하는 나의 농담에 할머니 할아버님들께서는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사이 나는 식당에 가서 미리 예약상황을 다시 점검하였다. 몇분즘 지났을까? 고작 몇분이 지났을뿐인데 방송에서 우리 일행을 찾는 방송을 하였다. 비로 젖어가는 절벽 주면은 풀길, 돌길, 시멘트길로 방문객이 선택해 걸을 수 있는데 1.4후퇴 할아버님 아내이신 의사 할머님께서 풀밭으로 걷다가 미끄러져 발목을 다치신것이다.

의무실로 가보니 의사 할머님의 바지가 진흙과 비로 범벅이 되어 젖은채 앉아 계셨다. 의무실은 응급구조대 청년 두명과 남편이신 할아버지까지 고작 네명이 있을뿐인데 내가 들어갈 틈이 없을만큼 비좁은 곳이었다. 얼음 맞사지를 하고, 파스를 뿌리고…..나는 마치 내가 밀어서 넘어지기라도 한듯 마음이 너무 미안스러워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데 할머님께서 “써니, 잠깐만 이쪽으로…”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네, 뭐 도와드릴까요? 필요한것 있으세요?”

“아니, 이건 별거 아니니까…괜찬고…..”

“그럼요? 아 맞다. 할아버님이랑 할머님꺼 식사는 샌드위치나 바게트 빵으로 대체해서 제가 갖다드릴 게요. 아무래도 식당이 2층이라 움직이시는 건 무리실 것 같아요. 얼른 가져올게요. 너무 시장하시죠?”

“아니, 그건 괜찮고, 그게 아니라…”

내 귀에 속삭이듯,

“원래 아이리쉬 애들이 이렇게 잘 생겼나? 미국에서 본 아이리쉬는 그렇지 않았는데 저 두 청년은 둘다 영화배우같네…..재들하고 사진한장 찍자고 하면 실례일까?”

할머님의 얼굴은 잘 생긴 청년들 때문에 수줍은 것인지 진흙으로 엉망이 된 바지가 창피한 것인지 발그스레 핑크빛으로 달아 올라 있었다.

“아, 아, 아니요, 청년들도 좋아하겠죠. 환자가 밝아서 의무사들도 마음이 덜 무겁겠는걸요!”


그리고는 할머님의 아이폰으로 신중히 각도를 잘 잡아 두 청년 사이로 할머님을 넣어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이뿌게 나온 사진이라며 기뻐하신다. 그 광경을 보시는 1.4후퇴 할아버님께서는 마치 딸을 보듯, 영화를 보듯 흐믓한 미소를, 아니 어이없는 웃음인지도 모르는, 그러나 하나도 노엽지 않은 얼굴로 바라보신다.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휠체어를 타고 버스로 이동하고, 오후 일정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버스에 계신 할머님이 마음이 걸려서 나는 다른 일행들에게 최대한 관광지 설명을 빨리 끝내고 사진 찍을 수 있는 자유시간을 드린 다음 먼저 버스로 돌아와 관광지 사진을 보여드리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랬다.


“그런데, 써니, 아까 그 청년들이 말야, 나이가 얼마나 됬을까? 난 미국에 40년 넘게 살았어도 젊은애들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더라구. 서른은 되었을까? 아니 서른은 좀 넘었겠지? 어쨌든 사십살은 분명 안된거 같애. 그치?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속이 깊지? 환갑 넘어서도 그렇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긴 쉽지 않거든. 나도 의사지만 환자한테 친절하게 하는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라고. 의사 눈에는 사고난 그 사건만 보이거든. 치료할 생각만 하기가 쉽지. 난 그 청년들처럼 그렇게 상처보다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의사는 아니었던거 같애. 아니, 퇴직할즈음 되서는 조금 그럴 수 있었긴한데. 아무튼 그청년들이랑 찍은 사진 좀 볼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제 통증이 좀 가셨나본데요? 하하”

의사 할머님이야 말로 함께 여행하는 일행들이 불편할까봐 일부러 밝은척 하는 것 같아 오히려 내가 미안스러웠다.

“근데말야, 써니, 써니땜에 다 망친거 알어?”

“네? 제가요? 어머 제가 뭘 잘못한거군요. 어쩌죠? 알려주시면….”

“그게 아니고, 아까 의무실에서 나한테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통에 의사라는게 들통났잔아. 어쩌면 더 오래 의무실에서 치료 받을 수도 있었는데 써니가 의사선생님이라고 밝히는 통에 내가 할수 없이 의젓한 척 해야 됬다고. 계속 엄살 좀 부릴라고 했는데. 크크 어쨌든 오늘 내 여행은 이 사진 건진걸로 성공이야! 완전 인생사진이지 뭐야. 고마워 써니.”


진실인 것 같았다. 다친것 보다, 엉덩이가 흠뻑젖어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인 창피함 보다, 오늘을 포함해서 내일과 모레…계속 이어질 여행을 제대로 못하게 된 것 보다, 두 개의 큰 짐가방을 연로하신 남편 1.4후퇴 할아버님께서 모두 건사해야 되는 미안함 보다, 그 무엇보다 두 청년과의 만남이 좋으셨던 것 같다. 그들이 잘 생겨서이기도하고 친절해서이기도 하고 힘이 세서 둘이서 번쩍 할머님을 앉아 올려 휠체어에 앉혀 주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더 감동적인 것은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들의 섬세한 배려와 따듯함이 누가봐도 완전히 다 망쳐버린 하루를 보드라운 담요로 어깨를 감싼듯 포근했음이다.


아마도 그것은 할머님 당신이 의사이기에, 다른사람이라면 특별하지 않았을 수 있는 교감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여행을 마치고 일행과 헤어지고 나면, 나는 마치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어딘가 걸린 박제처럼 일행이 기억하는 아일랜드 곳곳의 장면과 함께 기억의 박제가 되는 것 같다. 그나마도 열명의 아홉은 기억하지 못할텐데 1.4후퇴 할아버님과 의사 할머니 부부만은 아마도 오래오래 나를 기억하리라 싶다. 그것으로 나의 여행은 또 다른 의미와 추억이 되고 또한 더 발전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 놀고 먹고 돌아댕기는 나의 직업에 감동까지 더해지니 내 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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