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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2. 2018

나만 모르는 땅 '오지'

아일랜드 연가 9

제목 : 아일랜드 연가 9: 나만 모르는 땅 ‘오지’

십 몇 년 전인가…..

이젠 몇 년전 일을 기억해 내려면 아이들이 몇살이었던가, 몇학년이었던가… 

시간을 거꾸로 세어가며 더듬어가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정확히 몇 년도에 일어난 일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때 중학생인줄만 알았던 목사님 딸 시네이드가 초등학생이라는 말에 내가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 큰 아들 리오도 반에서는 꽤 큰 편이었는데 시네이드는 리오보다 훨씬 성숙해 보여서였다. 두 아이가 동갑이었으니 별써 12년전즘에 처음 만난 것이 맞을것이다. 한국인이지만, 호주에 살고 그곳에서 목회를 하시는 씩씩하고 용감하신 목사님, 남편이 아이리쉬라서 처음 갖게된 안식년겸 추가 학업을 위해 아일랜드로 오게된 가족.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쓰고 아이리쉬 음식과 호주음식을 섞어 먹으며 세 나라의 문화를 모두 가진 목사님 가족을 가끔 만났었다. 목사님은 딸이 둘이었고 나는 아들이 둘이지만 또래가 비슷해서 우리 가족은 꽤 멀리 떨어져 살았음에도 가끔씩 만나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고 4-5년즘 후에 안식년과 학업을 마치신 목사님댁은 호주로 돌아갔다.





아마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우리가 늙어간다면 우린 이미 천년 산 신선처럼 하얗고 긴 머리는 땅에 닿을 듯 하고, 기름기 다 빠져버린 헐렁히 늘어진 가죽만 걸친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빠른성장에 비해서 시들어가는 시간은 훨씬 더디가기에 우린 오래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갖고 다시 만나게 되었다.


카톡이며 페이스북이며 인스타까지 요즘은 서로 대화 한번 안해도 지인들의 근황을 얼마든지 예측하며 살 수 있는 편리한 세상되었는데 어쩐일인지 우린 서로 카톡 한번 하지 않고 몇 년을 훨쩍 보내버렸다. 그리고 어찌 연결이 되는지 며칠전 불쑥 ‘써니, 다음주 시간되면 저녁먹읍시다.’ 하며 마치 며칠 전 만났던 옆집 언니처럼 문자가 왔다.


때로는, 안녕하세요!, 건강하셨는지요?, 오랜만이십니다….하는 인사말을 하지 않는것이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몇 달만에, 몇 년만의 연락이라도 인사말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얘기하더라도 무례하다거나 배려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걱정하지 않는 ‘믿음’이 존재하는 관계. 목사님은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지만, 그리고 우린 서로 존대를 하며 격을 차리지만 불쑥 찾아온 카톡이 주는 간격은 누구보다도 가까웠다. 이번 방문은 순수하게 휴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호주땅에서 거의 가장 오지로 알려진 곳에 가기전에 흩어진 자신의 추억을 모아담는 듯한 작업으로 보였다.





목사님 휴대전화에 수없이 많이 저장된 사진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며칠후면 호주 북쪽 지방에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땐 그저 계획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함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손바닥만한 휴대전화에서 펼쳐져 나오는 사진들은 우리가 앉은 넓은 거실 가득히 영사기를 틀어 놓은 듯이 너무 넓은 느낌이라 한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무지한 나로서는 인디언이라고 밖에 표현 못할 가죽팬티 한장 걸친 청년의 모습이며, 엉성한 나무로 겨우 받쳐둔 판자집 관저며 목사님의 작은 입술을 통해 술술 빠져나오는 단어들은 예측하기 힘들만큼 거친 세상들이었다.


“선교 가셨다가도 이 나이즘엔 나오셔야 할 때인데, 왜 가셔야 해요.”

종교인의 사명과 그들이 품은 소명, 희망, 기쁨을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냥 우린 모두 인간이고 끝없이 더 나은 안락과 평안을 기대하는 존재니까. 그리고 이순간 나는 목사님 그녀가 아닌 동네 이웃 동생으로서 충실하고자 했음일 수 도 있다.

“선교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 봉사하러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고, 그 틈에서 그들의 하나님을 나도 만나고 싶어서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순전히 내 욕심인거죠. 아이들이 걱정도 되고 나 자신도 걱정이 되요. 평범한 엄마처럼. 그래서 이미 답사도 다녀왔고 그곳의 환경에 대해 아이들에게 잘 설명해 주었어요. 특별할거 없죠 나도. 평범해요. 단지 내가 준비할 것은 내가 없는 세상에도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준비하는 거에요. 그런걸 준비하는게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군요.”


나와 함께 거실에서, 마당에서, 저녁상을 차린후에도, 커피를 마실때도….목사님이 먼저 청하셔서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오지 인디언 마을에 가서 인간적인 외로움에 휩싸일 때 휴대폰 겔러리에 저장된 수백장의 사진들을 한장씩 꺼내가며 순간에 처한 고통도 밀어보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는지 모른다.




이런 목사님과 나에겐 몇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이나 누가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을만큼 걱정없는 웃음이다. 그리고 무모해 보일정도로 새로운 일에 겁없이 덤벼든다는 것. 처음 아일랜드로 남편이 발령을 받아서 짐을 싸고 떠나야 했을 때 나는 갓난 아기를 겨우 벗어난 아이들 엄마였고 나이는 고작 29살이었다. 아일랜드가 어디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고서야 어딘지 알게 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남편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도 아니고 두세시간 더 가야하는 시골마을 ‘슬라이고’에 살게 될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설레였다. 그곳에 다녀왔다던 직장 동료들과 가족들은 수도 없이 불편한 점들을 늘어 놓았다. 아마도 나에게 철저히 준비하라는 의미에서 였을거다.


한국쌀은 주변에 팔지도 않고  쌀 한번 사려면 두세시간은 차로 가야한다고. 고춧가루, 액젓, 멸치 같은건 구할 수도 없으니 미리 한국에 있는 가족한테 말해서 늘 소포로 받아야 할것이라고. 학용품이 비싸니까 미리 몇 년 쓸만큼은 이삿짐에 챙겨넣고, 옷가지도 거기서 사는 것은 우리 체형에 맞지 않으니 한국에 1-2년에 한번씩은 나와서 한번에 쇼핑을 해 가야한다고, 주변에 갈 만한 식당도 변변치 않아서 회사 손님들이나 출장자들이 있으면 돌아가면서 우리가 다 대접해야 한다는 것 까지.…..


그런데 그런 말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준비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거기도 사람 사는곳인데 거기 사람들처럼 살아보지 뭐. 하는 배짱이 생기기도 했다. 이십여년전에는 멕시코 같은 후진국에 가 있는 직원들에게도 지급되지 않았다는 ‘오지수당’이 아일랜드로 발령된 직원들에게 지급 되었으니 그때만해도 아일랜드는 아프리카 오지 만큼이나 외진 곳으로 인식되었나 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만 모르는, 당신만 모르는 곳을 우리는 ‘오지’라고 단정짓는듯 하다. 한국을 기준으로, 나 자신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 내가 보는 TV에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버스나 기차는 얼마나 자주 다니는가…..순전히 모두 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에 살다보니 한국에 가 보지 않은 아이리쉬들이 생각하는 ‘한국’도 ‘오지’나 다름 없었다. 심지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나라라고 알려줘도 ‘어머 그사이에 한국이 있구나’하며 놀라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해서 그들이 세계정세에 관심이 없다거나 교육수준이 매우 낮은 것은 아니다. 단지 관심이 없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외딴곳’으로 인지하는 것 뿐이다.




목사님은 내가 생각하는 ‘오지’로 떠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저, 예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신다고 하셨기에, 예전에 계셨던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흥분된 미소로 안심케하셨다. 헤어지면서 평소보다 좀더 꽉 끌어 앉으며, 나는 그녀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기도해야 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은, 여전히 나는 그녀의 행선지가 위험하고 고독할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을 버리지 않았음이며 길고긴 설명을 듣기는 했음에도 이해하지 못했음이다. 나는 잘 모르는 ‘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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