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말하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레스 푸블리카 [15]

by 이그나티우스

통일에 대한 논의에서 신기하리만치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 통일 직후 들이닥칠 대량의 북한 난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은 자원이 부족하면 자원이 풍족한 곳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역사는 그것을 말해준다. 지중해 청동기 시대를 끝장냈던 바다민족(Sea People),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훈족과 고트족, 한나라와 서진제국을 붕괴시킨 강족과 흉노족,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노르만족(바이킹)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위대한 제국들도 굶주린 난민들의 습격아래 무사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억압적인 북한 김씨 일가 정권이 무너지고 대한민국과 통일이 될 경우 북한 사람들이 부족한 물자를 찾아 남쪽으로 밀려 내려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통일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북한 주민들의 남한으로의 이동을 통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우선 첫번째. 북한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할 명분이 없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과 인류 보편의 권리로서 보장되는 기본권이다. 일부 제한을 가할 수는 있어도 북한 주민들을 아예 국경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끔 묶어 놓는 조치는 이러한 헌법적 원리를 우회하는 명분을 필요로 한다. 단기적으로야 혼란 방지를 위해 이동을 제한한다 쳐도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겠는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통일은 즉시 2국가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체제를 한동안 유지하는 점진적 과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 연합이라고는 해도 북한 주민들에게 일정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주민들에게 단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의 필수적인 권리의 하나인 거주이전의 자유를 무한정 제한하는 것은 명분상 맞지 않다는 지적이 대내외적으로 터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통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북한 주민들을 2등국가 시민인 것처럼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헌법상 논란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하고 있고 북한 주민들도 명분상 대한민국 국민인데(그래서 탈북자는 일반 이민자와 법적 지위가 다르다), 이들을 ‘현실적인 이유’로 헌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반발과 헌법적인 논란을 당연히 초래할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그토록 억압적이었던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조선인들이 내지(일본 본토)로 이동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최신 학문을 배우고 독립운동과 미래국가 건설을 위해 필요한 기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그곳에서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현지 일본인들을 제치고 엘리트 반열에 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혹독한 일제도 식민지인들의 일본 입국을 막지 않았는데 북한 주민들의 남한 이주를 막겠다는 것은 우리가 조선총독부보다 더 엄격하고 가혹한 통치를 북한에 가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과연 이것이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통용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만한 일인가.


다음으로 제기할 문제는 다행히 북한 주민들의 남한으로의 내투를 방지할 만한 논리를 개발했다고 해도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즉, 휴전선을 건너 넘어오는 북한 주민들을 막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라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탈북자를 엄히 단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상당히 많은 숫자의 북한 주민들이 경계를 넘어 월남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억압적인 정권이 사라진다면 상식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밀고 내려올 것이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현실적인 문제를 이유로 북한 주민들의 국경 밖으로의 이동을 강하게 통제할 경우 당장에 통일 한국이 김씨정권보다 나은게 뭔가? 라는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불만을 차치하고서라도 보트를 타고 NLL을 넘어 월남하는 난민들의 행렬,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제3국을 거쳐 들어오는 북한 사람들의 행렬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우리가 이동을 금지한다고 해도 일단 대한민국 영토 내에 진입할 경우 그것을 어떻게 퇴거시킨단 말인가? 지시에 불응할 경우에 총이라도 발포할 것인가? 아니면 2명이 1명씩 붙잡고 국경 밖으로 던져버리기라도 할 것인가?


웃기는 얘기가 아니다. 후기 로마제국 최악의 참사였던 아드리아노플 전투는 다뉴브 강을 넘어 무차별적으로 남하하는 고트족을 로마제국이 제대로 인솔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한꺼번에 넘어오는 고트족 난민들에게 충분한 물자를 공급하는데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지 않은 난민집단이 폭동을 일으켜 발칸반도 전역을 휩쓸고 다니다가 급기야는 황제가 포함된 로마제국의 정규군을 섬멸하는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아드리아노플 전투의 사례는 군사훈련을 받은, 굶주린 난민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인지를 말해준다. 북한 난민은 고트족보다 훨씬 고도로 훈련받은 전직 군인들이 대부분인 집단이고, 고트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많다. 이들이 도보나 고무보트 등에 의지하여 집단으로 휴전선을 넘어 월남한다고 했을 때 이런 인간의 행렬을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지 잘 이해하기 어렵다. GOP나 해안초소의 경계병력이 경고한다고 해도 그들이 숫자를 믿고 무작정 몸으로 밀어 붙인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있는가?


세번째. 남쪽으로 이동한 북한 주민들, 그리고 설령 이동하지는 않았더라도 북한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활의 보장을 하는 문제이다. 앞서 말했듯 북한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지금 당장 통일할 경우 말 그대로 우리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긴급구호를 실시해야 하는 주민의 수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점진적 통일론자들의 주장대로 그들에게 헌법을 적용하지 않고 점진적인 체제이행을 도모한다손 쳐도 일단 통일이 된 이상 명분상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지원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북한 지역에서 기근이나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책임지지 않고 방치라도 한단 말인가?


지금 대한민국은 인구구조의 변곡점을 넘어 인구감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경제적인 전망은 좋지 않고 현재 국내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에 북한의 엄청나게 많은 기아선상의 빈민층들을 구호하는 것은 밑빠진 독의 물붓기 식의 끝없는 재정지출을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남한으로 밀고 들어와 난민캠프 등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문제이다. 이들을 강제로 끌어내서 북한으로 다시 송환할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계속 게토처럼 살게 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동화와 통합을 추구할 것인지, 자치 행정구역을 만들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낸다면 당사자의 의지와 배치되는 반인권적 강제이주에 해당하여 국제적 지탄을 받을 것이다. 게토와 자치구역을 만든다면 역시 국가 내의 2등시민 계급을 만들게 되어 당사자들의 불만과 도덕적 딜레마를 초래할 것이다. 동화와 통합을 추구한다? 지금 서구 각국은 이민자들의 동화가 쉽지 않아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 70년 이상 북한의 억압체제에서 살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이들을 동화시키는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동화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도국 중에서는 상당히 개발된 공업지대인 동북3성에서 이주한 조선족에 대해서도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 그대로 지구 최빈국 수준의 북한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인내할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통일 이후의 중국과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이루기 위해 통일을 한다?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기 전에 우리가 실제로 통일이라는 과업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를 자문해보는 것이 먼저 아닐까?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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