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종규 Aug 26. 2016

전설 한 편

옛날, 어느 나라에 한 발명가가 살았다. 그가 만든 기막힌 발명품에는 정말 좋고 색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고심하던 차에 한국(조선)에서 글자를 발명했다는 세계발명가협회의 소식지를 접하게 된다. 그는 글자를 발명한 세종임금에게 그의 발명품이 명명되기를 희망하고 드디어 한국 땅을 밟게 된다.


"마마, 저의 발명품에 이름을 하사해 주시옵소서."


"그래, 그대의 발명품은 어떤 종류의 것인고?"


"예,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일종의 운송 수단이옵니다."


세종임금은 운송 수단이란 말에 '타'자를 넣기로 마음먹고, 도승지에게 명을 내렸다.


"이 사람의 발명품이, 그 성능이 십분 발휘되게 경은 만전을 기하시오, 내 친히 그것을 타 보리다."


발명품은 경복궁 깊숙한 곳에 설치되었고, 무거운 발명품의 운반과 설치에는 거중기가 사용되었다고 혹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이보다 훨씬 뒤에 거중기가 발명된다는 것이나 이 부분에 대한 고증은 아직 해 보지 못하고 있다.


드디어, 설치가 끝나고 발명가와 세종임금은 시승을 하였다. 문이 닫히고 실내는 컴컴해졌다 잠시 후 세종임금은 묘한 기분을 느낀다. 컴컴하면서도 약간의 어지럼증과 속이 불편한 느낌은 어가(御駕)나, 말을 타는 기분과는 달랐다.


'기분이 묘하군, 마치 풍랑 속에 갇힌 배와 같이 …….'


세종임금은 '배에 타'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작정했다. 잠시 후에 '배에 타'는 멈추었고 문이 열렸다. 세종임금은 깜짝 놀랐다. 아직 태어나 한 번도 올라 보지 못한 경복궁의 지붕 위였고, 신하들이 아래 먼 곳에서 자그마하게 보였다.


'음, 이건 사람을 위로 올려 주는 것이구나. 이름을 <올리 배에타>라고 하면 적당하겠군.'


"짐이 그대에게 이름을 하사하겠노라."


"마마, 아직 이 발명품의 성능을 다 보신 것이 아니옵니다."


세종임금은 발명품의 성능을 다 본 후 이름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나, '올리배에타'라는 심증의 작명에 무척 흐뭇해하였다. 다시 컴컴한 실내를 지나고 이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세종임금은 더욱 놀랐다.


'아니, 이렇게 놀라운 발명품이, 이건 사람을 올려다 줄 뿐만 아니라, 내려도 주는 기계로 구먼.'


세종임금은 발명가에게 '올리배에타', '내리배에타'를 합성한 이름을 하사한다. '올'의 'ㅇ', '내'의 'ㅐ', '올'의 받침 'ㄹ'을 합성하여 '앨'을 만들고 공통된 '리배에타'를 붙여 '앨리베에타'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으니, 이 발명품이 어떤 것인지는 모든 독자가 익히 알고도 남을 것이다.


발명가는 '앨리배에타'란 이름에 아주 흡족해하였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가 더욱 놀랄만한 것을 발명하게 된다. 그러나 세종임금은 돌아가셨고 발명가도 이제는 늙어버렸다. 다시 가기는 어려우나 발명품의 이름을 조선에서 짓고 싶어 상세한 제품 설명서를 동봉한 편지를 보내게 된다.


세조는 발명품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는 신하에게 벼슬을 올려줄 것을 약속하였다. 대신들은 정사를 돌보는 일보다 이름을 짓는 일에 더욱 열중하였다. 근정전의 계단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신하들의 발걸음으로 모가 닳고 있었다. 한 대신이 그 광경을 보면서 드디어 당첨작을 내게 된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대신들을 유심히 보던 그가,


'참, 별 쓸데없는 짓 다하고 있군. 저기에 그게 설치되어 있었다면, 애써 저렇게 걸어 갈래니 타고만 있으면 될 텐데. 아!'


무릎을 탁 치면서


"애써 갈래니, 타!"


이것이 어떤 기계인지는 또한 쉽게 알 수 있으리라.


경복궁의 깊숙이 설치되었던 '앨리배에타'는 세월이 가면서 점점 사람들의 뇌에서 잊혔고, 후에 경복궁을 재건하는 일만 없었더라면 오늘날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인데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경복궁을 해체하는 중에 앨리배에타가 발견되었고, 그 소식은 가장 먼저 대원군에게 전해지게 된다. 현장에 도착한 대원군은 그것을 유심히 살피다가 앨리배애타 표면에 적인 '양글'을 보게 된다. 관계자 몇을 엄중히 함구시키고, 앨리배에타와 관련된 사료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이전의 사실은 간간의 자료로 고증해 보았으나, 그 후 앨리배에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1989년 12월, 금정여자중학교 신문 '분수대'에 발표)

매거진의 이전글 석영과 수정은 무슨 차이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